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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27일에는 문화유산 답사 떠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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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동락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08-01-14 17:50 조회9,5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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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8산악회 금년도 계획에 의거 1월 행사의 일환으로 수원화성 문화유산 답사를 아래와 같이 실시하오니 동기여러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이번 답사 대상지인 수원화성은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우리의 문화재로서 특히.정조임금이  방문 기거했던 화성행궁은 드라마 대장금의 촬영지이기도 합니다.

1, 일   시 : 2008 : 1 . 27(일)

2, 장   소 : 수원화성(화성행궁-남포루-서장대-화서문-연무대-창룡문-봉돈)

3, 집결장소 및 시간 : 화성행궁앞. 10:00

4, 일   정

   가, 10 : 00. 집결완료 및 출발

   나, 10 : 00, - 13 : 00, 행궁 및 성곽 답사.

   다, 13 : 00, - 15 : 00, 정기총회 및 점심(재래시장내 토속음식점)

   라, 15 : 00, 행사일정 종료 및 현지해산.

5,기  타

   가, 복장 및 신발은 편안한 야외 나드리 차림.

   나, 간식 및 음료수는 각자 알아서 하십시오.

   다, 당일 참석자 중 1월에 회갑이 되는 동기를 위한 간단한 회갑 축하

      행사를 가질 예정이오니 해당동기는 사전에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음 

   라, 당연한 말이지만 산악회원이 아니라도 환영 합니다.

   마, 이 날은 김대규 동기가 특별히 준비한 카메라로 기념이 될 수 있는

         멋있는 사진을 촬영해 주겠다고 하오니 많이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6, 교  통

   가, 지하철 이용자 : 수원역 하차 후 종로사거리(화성행궁 앞)행 시내버쓰

                                2, 7, 7-2, 8, 13번

   나, 시외버쓰 이용자 : 수원-강남 3000번 좌석 이용 수원역 하차

                                 후    위   버쓰 이용

   다, 자가용승용차 : 화성행궁앞 주차장 이용 편리. 주차료 저렴

  

 

 

水原 華城

 

 

 

案內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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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安門(장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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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砲樓(북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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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北心空墩 (서북공심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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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安公園(장안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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華西門(화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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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一雉(서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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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將臺(서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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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暗門(서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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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南暗門(서남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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華陽樓(화양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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八達門(팔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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烽墩(봉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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蒼龍門(창룡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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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北弩弓臺(동북노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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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北心空墩(동북공심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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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暗門(북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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訪花柳亭(방화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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華虹門(화홍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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華城行宮(화성행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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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旗(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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蒼龍門 一部(창룡문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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練武台(연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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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豊樓(신풍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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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豊樓前(신풍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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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豊樓의入口(신풍루의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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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豊樓의 처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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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장면 展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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雲漢閣(운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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洛南軒(락남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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華西門(화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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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아름다운 성입니다.

 

성도 구경하시고 친구도 만나고

 

쐬주도 일잔 같이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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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 호 (수원시 학예연구사)
 
세계문화유산 화성이 1997년 12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지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특히 올해 7월 1일에는 우리나라 '조선왕조 의궤' 833종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중에서도 화성 건설의 전 과정이 기록된 『화성성역의궤』와 1795년 윤 2월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기록인 『원행을묘정리의궤』는 화성과 관련된 뛰어난 기록유산이다. 경기도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및 세계인이 화성과 이러한 모든 문화유산에 대해 자랑과 긍지를 지니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세계문화유산 화성에 대해 지나치게 과장된 인식을 갖고 있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그 중 첫 번째는 '천도설'이다. '천도설'은 정조대왕이 노론의 권력기반인 한양을 버리고 수원으로 수도를 옮기고자 하였다는 것이다. 당시 일부 노론 세력들 사이에는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 원침을 천봉하고 수원에 새로운 신도시를 건설하면서 5.7km에 달하는 성곽을 축조하는 행위가 혹시 수도를 옮기고자 하는 정조의 깊은 뜻이 아닐까 의혹이 제기되었다. 그렇지만 큰 하천이 없는 수원의 지형적 특성과 화성행궁 자체가 소박하고 서울의 궁궐 건축과는 그 규모면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여주는 등, 이러한 추측은 과장된 것이었다. 정조대왕은 순조가 15살이 되는 갑자년(1804)에 왕위를 물려주고 아버지가 묻힌 화성에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내려와 노후를 보내면서 사도세자를 추숭하고자 하는 정치적 기지를 상정했던 것이다.
 
두 번째는 화성이 '세계 최초'의 계획된 신도시라는 주장이다. '세계 최초'라는 단어는 매우 듣기 좋은 말이긴 하나 우리는 항상 사물과 사안에 대한 판단은 냉정하고 실사구시적으로 해야할 것이다. 시간적으로나 규모면에서 평양, 경주, 개성, 한양 등의 도시도 계획된 신도시라고 할 수 있다. 전세계적으로도 우리 익히 아는 도시들은 거의 계획된 신도시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동안 수천 년의 누적된 우리의 성제와 각국 성제의 장점을 따서 건설한 '계획된 신도시'라는 규정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특히 자랑할 만한 것은 신도시를 건설하고 총체적인 '공사보고서'가 남아있는 유일한 도시라는 데 있다.
 
세 번째는 1796년 10월 거행된 낙성식에 정조가 불참한 상황 설명이다. 그동안 정조대의 모든 사안들은 대부분 정치적 해석과 정치 논리로 해석되었다. 즉 '노론 벽파' 와의 긴장된 정국에 그 원인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정조가 오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마침 9월에 옹주가 천연두를 앓자 7살 난 순조를 데리고 거처를 이문원으로 옮기는 긴박한 상황 때문이었다. 왕위를 이을 세자의 보호가 낙성연보다 중요하였던 것이다.
 
네 번째는 1794년 1월부터 화성성역을 시작해서 1796년 9월까지 총 33개월 중 가뭄이 들었던 1794년 6개월간 성역을 중단했다는 설이다. 물론 실록에는 불볕더위와 흉년, 재정 부족 등의 이유로 화성 성역을 중단하도록 명한 일이 있었다. 몇 번에 걸쳐 화성 성역 중지를 명하였지만 실제는 논의만 무성하였지 성역은 계속되었다. 성역은 1795년 윤 2월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과 맞물려 있었으며 회갑연은 군사훈련, 양로연, 과거시험 등 화성을 진흥시키고 정조의 위용을 과시하는 절호의 기회였다. 따라서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은 대단히 중요하고 연기할 수 없는 행사였다. 이 회갑연에 맞추어 화성의 정문인 장안문과 남쪽문인 팔달문은 행사 이전인 1794년 하반기에 완성되었고 임금이 오고가는 길목인 북쪽 성벽과 군사훈련의 최고 지휘부인 화성장대도 이미 완성되었다.
 
마지막으로 정조 '독살설' 이다. 정조는 화성이 완성된 지 약 4 년만인 1800년 6월 28일 사망하였다. 정조 독살설이 유행하거나 정설화된 것은 정조가 기운이 다 떨어져 들릴 듯 말 듯 정순왕후가 거처하는 '수정전'을 가리킨 것과 정순왕후가 청심환을 직접 들고 정조에게 들어간 후 막바로 사망한 정황과 관련되어 있다. 수정전을 가리킨 것은 여러 해석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건강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 '독살'이지, 이미 죽어가는 가망이 없는 사람에게 일부러 무엇 때문에 큰 일을 도모하겠는가. 『실록』에 의하면 정조는 이미 5월경에 등쪽을 비롯하여 여러 종기를 앓아오다 의술에 정통한 본인이 직접 처방을 하면서 6월 28일이 되면 이미 기력이 떨어져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극적인 일을 좋아하는 비역사가적 안목이 빚어낸 상상력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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