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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산 자의 이야기(그 어디에도 나는 없었다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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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현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0-04-24 01:35 조회8,9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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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디에도 나는 없었다 [독수리, 독수리...] - long 안테나

어느 날

아군의 전상자들을 수습한 후 연대본부에 무전을 한다.

 

“독수리, 독수리, 여기는 도깨비, 응답하라”

몇 번이나 호출했지만 응답이 없다.

거리가 너무 멀어 감이 잡히질 않는가 보다.

 

나는 할 수 없이 살금살금 언덕에 기어올라 다시 교신을 시도한다.

오금이 저리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며 말도 제대로 나오질 않는다.

역시다. 응답은 고사하고 수화기엔 고요한 침묵만이 흐를 뿐이다.

이제 남은 마지막 방법을 쓸데가 왔나보다.

long 안테나를 꽂고 좀 더 높은 지역을 찾아 교신을 해보는 수밖에....

 

나를 축으로 전우들은 원을 그리듯이 빙 둘러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연대장 이하 장교들은 007다리 아래 은신하여 작전을 논의하는 듯했다.

나는 혼자 더 높은 곳으로 살금살금 기어 올라가 또 다시 연대를 호출한다.

 


[자욱한 포연 속에 갇힌 나]

넋 나간 사람처럼 정신없이

“독수리, 독수리, 독수리..”를 연호하고 있는데...

갑자기 내 앞 수로에서 “쾅, 쾅, 쾅... ” 하는 요란한 폭음소리와 함께

수십 발의 B40 포탄이 떨어지며, 주위는 온통 포연과 먼지로 자욱했다.

순간 나는 나도 몰래 납작 엎드려 무전기를 벗어 내 머리 앞에 놓았다.

포연 속에 힘없이 쓰러지는 long안테나를 바라보고 있던 옆 전우의

“이병장이 죽었다. 이병장이 맞았다” 하는 고함소리가 내 귓전을 때린다.

‘어, 아닌데? 난 멀쩡한데,,, 참말로 한심한 친구네’ 혼자 중얼거리며,,,

 

적은 B40(포)을 내 안테나를 겨냥해 수십 발 쏘고 달아난 것이다.

주위는 다시 조용해졌다. 이를 두고 寂寞江山이라 하던가.......

 

 

[총알은 허공을 가르고] 

일어서려는 순간 나는 자신도 모르게 M16 방아쇠를 잡아당긴 것이다.

총은 자동이라 “두두두두 ~ ... ” 요란한 소리를 내며

아래로 향했던 총구가 점점 높이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당황한 나머지 나는 나도 모르게 총을 땅바닥에 던져버렸다.

다행스럽게도 아무른 불상사 없이 총알은 다 발사된 것이다.

 

옆에서 고함 친 전우가 “어! 이병장 살아있네?”

의아하다는 듯 넌지시 나를 쳐다보고 웃으면서 말한다.

베트콩은 수십 발의 포탄을 일열 횡대로 쏘고 달아난 것이다.

좋은 말로 수십 발의 포탄속에 상처하나 없이 살아난 풍운아다.

던진 총을 다시 집어 들어 살펴보니 총알은 다 발사되고 없었다.

 

인간은 절대 절명의 절박한 상황을 당하게 되면 그 순간만은

이성적 판단보다는 동물적 본능이 우선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천신만고 끝에 연대와의 교신은 재개되었고 연대장의 명령으로

백마 28연대 전 포대는 124고지에 집중 포격을 하게 된다.

 


[나의 존재는 계속되고]

상황은 종료되었고 부대원은 도보로 철수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걸으면서 오늘의 일들을 곰곰이 생각하며 정리해본다.

 

그래 ‘나는 존재하는가 봐? 존재하는 인간임에 틀림없어’

이성과 본능이 교차되는 위급한 상황에서의 나의 행동을 보면...

씁쓸한 미소를 몰래 입가에 띄우며

‘그럼, 나도 인간이지. 내가 살고자 할 때가 다 있구나?’

그 사건이 있은 후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고,

많지는 않지만 술도 한 잔씩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나는 그 어디에서도 내 자신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나를 상실한 체 살아가고 있으니...

 

"자신은 찾고자하면 찾을 수 없다.

나라는 것은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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