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사랑(어느 산자의 이야기)
[긴급 타전]- "따이한, 따이한 교전 중..." 한 줄기 소나기가 때리고 난 뒤 싱그러움과 적막함으로 마음마저 침묵하는데 갑자기 “따이한, 여기는 성청, 따이한 교전 중, 따이한 쫓기고 있다. 확인 바람” 무전을 접수한 C대대는 즉시 비상사태에 돌입했다.
“무전병! 무전병, 뭐하나? 빨리 각 중대별로 정확한 인원 파악하지 않고?” 그때서야 나는 제정신이 돌아온 듯 목청을 높인다. “독수리 하나, 둘, 셋, 여기는 도깨비 쓰리, 즉시 인원보고 바람. 이상”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는 흥분되었고 잔잔한 떨림이 일고 있었다. 각 중대에서는 즉시 “이동병력 없음. 이상 무” 하는 답신이 왔다.
[잠시 후] - 침묵과 비통 그래, 그럼 그렇지. 우리 애들이 쉽게 당할 리가 있나. 이때 “따이한! 따이한! 여기는 성청, 따이한 군 전멸이다”라는 소리와 동시에 “도깨비 쓰리, 여기는 독수리 둘, 병사 13명이 이동 중 교신 두절이다.” 다급하고 흥분된 무전병의 목소리다. 설마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제기랄, 당했다. 당했어...’ 난 멍하니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지금은 일몰이라 병사를 이동할 수는 없다. 내일이라는 날이 밝아야만 출동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 날 새벽] - “야! 무전병....” “야, 무전병 하나 나와” 하는 고함 소리에 난 무전기를 짊어지고 M16 소총을 든 체 연병장으로 뛰어갔다. “이 병장, 내 옆에 바싹 붙어 있어” "예~~" 우린 두세 시간의 고된 행군 끝에 007다리에 도착했다.
[007다리 도착 후] - “어찌 된 거야? 이 새끼야...” 병사들의 수색이 시작됐다. “어? 저기 아군이 있다. 야. 이리 나와” 007다리 아래 멍하게 서 있는 아군 병사 둘을 발견하였다 “야, 어찌 된 거야? 얘기해 봐” 공포에 찌든 두 병사는 말이 없다. “어찌 된 거야? 이 새끼야, 빨리 말 못해?” 그리고 연대장은 “무전병, 빨리 잠자리(헬기) 불러”
[아! 전우여] - 하나, 둘.....아홉 조용한 침묵이 잠깐 흐른다. 부대의 모든 포대와 GUNSHIP(무장헬기)의 집중 사격으로 124고지는 초토화 되고 수색이 다시 시작 되었다. “소대장님, 여기 시체가 있습니다.” “여기도 있습니다 ” “여기도... ” 여기저기서 발견되는 처참한 전우의 시체와 무기들... 말없이 전우들의 시신을 수습해 수로 위에 옮겼다. 하나, 둘..... 아홉. 두 명이 모자란다. 아니 두 명이 보이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 - 戰 友 愛 우린 124고지 쪽으로 조심스레 이동했다. 그리고 큰 소리로 “탁 병장! 탁 병장! 나 상병! 우린 한국군이다. 빨리 나와라” 고래 고래 고함을 지른다. 다행히 적들은 도망치고 없는 듯 했다. 얼마 후 “여기 있어, 여기”하는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그때서야 안심한 듯, 한 병사가 부상당한 전우를 가슴에 안고 묵묵히 적의 소굴에서 우리 쪽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온 몸은 붉은 피로 얼룩졌고, 가슴에 총을 맞은 나 상병의 몸엔 타울 하나만 걸친 체... 가슴이 뭉클 하면서 쏟아지는 눈물에 비친 그 모습은 바로 탁 병장이다. 적탄에 맞은 전우를 안고, 그것도 밤새도록 적 소굴에서 보낸 길고도 먼 악몽같은 하룻밤. 그 때의 심정은 오로지 탁 병장 자신만이 알 것이다. 아!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 戰友愛란 것이구나.
[무거운 발걸음] “여기는 도깨비 쓰리, 낙엽 아홉, 반창고 둘. 상황 끝” 우리는 도보로 철수했다. 나 상병은 후송되었다. 탁 병장도 함께... 그 후 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난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 당시 이국땅에서 산화한 전우들의 명복을 빌면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