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고향 비파골의 입춘 무렵 겨울 전경입니다. 자주 가 보진 못하지요. 계절따라 많아야 기껏 일년에 서너번 들러 보는 정도인데 겨울철 모습은 언제봐도 허접하고 더 쓸쓸해 보이지요.
유달리 금년은 더욱 그렇네요. 지난번 추석 무렵과는 너무 대조적인 게 뭔가 좀 텅 빈 느낌 ㅡ 아! 마을 뒤를 감싸듯 우거져 있던 대나무 숲이 몽땅 사라지고 없군요.
" 아재! 어떻소?... 엄청 시원하고 훤하재?"
- 글쎄... 너무 허전해 보이기도 하고.....
이장 얘기론 아무도 찾지않는 대나무를 누가 사 가겠다 그래서 열흘 넘게 걸려 베내고 댓가지 추리고 그랬답니다. " 전엔 돈밭이었지만, 요샌 쓸모도 없고 모기만 득실거리고. 그렇게라도 치워버리는 게 낫지..." 하고.
- 대숲 또 기를거지? 죽순은 언제 올라올까?
막걸리 안주로 죽순나물을 씹으며 아쉬운듯 또 물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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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옆 웃대 할아버지 산소 아래엔 나만큼이나 오래 된 아름드리 참나무 숲이 있었더랬는데 죄다 잘려져 있어 놀랐지요. 참나무를 목재로 꼭 써야할 무슨 일이 있는 걸까?...아니래요. 그 자리에 동네 정자를 지을 거랍니다.
하필이면 그 좋던 나무 베어내고 거기다 정자를 짓는다니? " 정자 지을 예산은 타 놨는데 마땅한 장소가 있어야지? 땅을 내 놓거나 팔려는 사람도 없고...." - 꼭 정자 지어야 되나?...
"여름철 동네 어르신네들 여가 즐길 공간이라도 만들어 드려야지.또 객지에서 온 분들 쉴 자리도 있어야 하고. 주차장도 더 넓혀야 되는데..
것도 땅이 문제고 일손이 고민이더랑깨요.."
조그만 산골 마을 살리느라, 정자에 주차장에 천정개발에 샛길 포장에 건당 기천만원씩 지원금 나와 고무적이긴 한데.......... 이래저래 숲만 작살나면 어떻게 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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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뒹굴어져 있는 참나무를 보니 맘이 좀 아프더이다. 코흘리개 시절 도토리 주울 때나 소꼬삐 매달 때에도 내 다리 보다 더 굵었으니... 아마 5~60년은 넘었겠지요? 난 정자마루보다 참나무그늘이 더 시원하고 아늑할 것 같은데....
그런데 아름드리 참나무도 뒤 치닥거리가 문제랍니다. 치우기도 쉽지않고 연로한 어르신들뿐이라 옮기는 것도 예사일 아니고, 아무도 거져라도 가져갈 사람도 없고......
토막 토막 잘라놓으면 모를까? 목재로 활용할 여지도 없다는군요. 60년 공들여 자라온 내 집앞 참나무의 씁쓸한 뒷모습을 봅니다.
♣ 잘 모르겠군요. 객지 사는 우리는 늘 우리 생각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고향은 늘 푸르러야 되고, 아직도 초가집 처마에 참새들이 숨어 들어 오는 꿈을 꾸고, 감나무든 대나무숲이든 있던 그대로 제자리 있어야하고...... 그러면서도 수풀헤치며 조상들 산소 찾아 산 오르는 건 싫고.....아무런 도움도 못주면서 고향분들 애로나 바램이 어떤지는 헤아리지도 못하면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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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산 자락 증조 할아버님 산소에서 바라본 동네 모습입니다. 여기 자리가 좋다는 군요.
조카들 등쌀(?)에 금년 윤 오월쯤엔 조상님들 산소를 이곳 묘역으로 다 옮겨야 될것 같습니다. 곳곳에 흩어져 있는 산소 찾아 성묘 돌다 보면 한나절 이상 걸리고, 뭣보다 멧돼지들 행패에 보전하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니라서요.
그나마 우리 세대지 손주뻘들은 아예 찾지도 않는 산소 ㅡ 그러니 차몰고도 바로 들를 수 있게 동네 가까운 곳에 같이 모셔 놓아야 앞으로 자손들도 쉽게 찾아 볼게 아니냐는 거지요.
맞는 말이기도 하군요. 사실 나도 이번엔 산올라가기 싫어 성묘도 다 돌지 못했으니까.....
지난 가을 성묘길에서 내려다본 저 아래 들판과 마을모습이 또 그런대로 한 폭의 그림이었는데 이제 금년 가을 쯤은 그런 추억도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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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집앞 감나무와 편백나무는 건재하네요. 이 감나무는 나 어렸을 때도 굵기가 이만 했었으니 족히 80은 넘었겠지요? 마을 분 아무도 이 감나무 몇년 된 건지 몰라요.그래도 해마다 토종감을 가지 휘도록 열어주고 여름한철 시원한 그늘 만들어주는 일에 변함없지요.
참 오래 지켜봐 왔지요. 너무도 변화 무쌍한 격변기에 예서 태어나 살다 죽고 예서 살다 떠나가는 우리와 조상들의 삶의 과정 그냥 묵묵히 보아오면서 말입니다.
편백나무 삼나무도 마찬가지지요.그 나무아래서 크고 자랐으니..... 언제나 그 근처만 가면 진동하는 짙은 나무향땜에 또 철없이 뛰어 놀던 그시절 동무의 어린 모습들 환상땜에. 코끝이 시큰둥해지곤 했더랬죠. 이젠 두번 다시 같이 모여 살기 어렵겠지만,... 어디에 있든 그저 건강하게 오래들 살아 주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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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바램은 남았습니다. 5월되면 팔뚝만한 대나무 죽순이 앞다퉈 올라와 2-3년내에 대숲을 도로 이룰거고
편백나무 삼나무숲은 할아버지 울타리니 어떤 경우든 지켜 주실거고 .........
어쩌면 더 나아질른지도 모르겠군요, 산소아래 예쁜 정자가 들어서 가끔씩이라도 객지 어린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웃음이 이어져 준다면......동네 어르신들의 꿈같은 소망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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