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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지식2(무왕과 선화공주의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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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자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09-02-19 10:53 조회9,9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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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무왕과 선화공주는 결혼했을까.




삼국유사 제2권에 보면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는 밤이 되면 남몰래 서동 방을 드나든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학계를 중심으로 삼국 통일을 놓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던 백제의 왕과 신라의 왕이 사돈관계를 맺는 게 과연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제기됐던 게 사실이다. 일단 고려후기 중 일연(1206-1289)이 편찬한 삼국유사는 삼국 통일 후 수백 년 뒤에 쓰여 졌고, 통일을 이뤄낸 신라의 역사담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여기에 정사라기보다는 고려시대 때 스님이 지은 야사인 설화풍인데다 격전 중인 신라와 백제 사이에 결혼이 성립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혹이 이런 의심의 골자를 이루고 있었다. 이 같은 학계의 의심은 19일 국립문화재연구소가 공개한 미륵사지 석탑 내 '금제사리봉안기'로 인해 한층 더 증폭되었다. 조사 결과, 미륵사를 창건한 백제왕후는 선화공주가 아닌 좌평 사탁적덕(沙乇積德)의 딸인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한상 대전대 교수는 "백제 말기 시대 상황에서 볼 때 적국인 신라의 공주가 무왕의 왕비가 될 수 있었을 지에 관해서는 역사학계에서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며 "미륵사지 석탑에서 발견된 '금제사리봉안기'에 대한 판독 결과 미륵사를 창건한 백제왕후는 선화공주가 아니라 백제 좌평의 딸인 것으로 나타난 점에 비춰 설화 자체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2009년1월19일 미륵사지 출토현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유물 일부를 공개했다. "백제 성왕(554년)이 신라군에 붙잡혀 살해당한 후 더욱 격하게 전개되는 백제-신라 간 전투 상황에서 과연 양국 간의 결혼이 가능하겠냐?"는 말도 곁들였다. 이번에 발굴된 '금제사리봉안기'에는 "王后佐平沙乇積德女種善因"이라는 구절이 명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유적으로 매년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이브 날 저녁에 선물을 가져온다는 산타는 선화공주였고 실제로 선물을 마련하는 아빠는 사탁적덕의 딸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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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지 석탑내 '금제사리봉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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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지석탑 내 사리장엄 舍利莊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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