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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回想]-칭구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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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성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08-08-02 14:02 조회5,662회 댓글13건

본문

 

여름이면 먹는 구수한 미숫가루를 대할 때면 가물거리는 한 토막의 추억을 떠올린다.


우리 고2 때가 아마 천구백육십 육년이었지?

그 시절 서울시장을 하던 선친의 죽마고우, 그 분 후원으로 온 식구가

서울로 이사를 하였고, 나는 여름방학을 틈타 남은 짐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진주 중앙시장 인근 수정남동 우리 집과 대문을 마주하던 옆집에 진고에 다니던

(참으로 난감하지만) 이름은 커녕 성조차도 기억할 수 없는 내 또래가 있었는데,

그도 이사 온지 얼마 안 됐고 평소에도 워낙 말 수가 적은 친구라 서로 변변한

얘기도 주고받은 기억이 없다.  다만 그의 부친께서 은행의 지점장으로  부산서

왔다는 정도만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한 가지 요상한 것 은  그 집에 먼 친척

인듯한 아주 곱상하게 생긴 여학생이 있었는데 그녀의 성이 백씨라는 것은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그런 정도의 이웃이던 그가 하루는 나에게 여름방학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지리산 등반과 아울러 무전여행을 계획하고 있는데 같이 가자는 것이다.

 

그와 그의 친구(이 친구 이름도 기억에 없는 걸 보면 정말 한심하다) 한명과 같이

지리산을 넘어 전라도를 거처 속리산까지 무전으로 쌩 고생한번 해보자는 야무진

그들의 계획에 반해, 나는 그저 빈둥대며 지내기가 무료하기도 하고 말로만 듣던

지리산 천왕봉을 꼭 한번 오르고 싶은 마음에 별 생각 없이 그러자고 했다.

입고 있던 작업복 바지에 농구화, 긴팔하나 짧은 팔 하나, 그래도  배낭은 친척 

아제한테서 빌리고 쌀과 감자 몇 개 준비하고 (사실 텅 빈 집에는 별로 챙겨

갈 것이 없으므로) 멍청하게시리 간식과 반찬은 처음부터 얻어 먹을 작정이었다.


드디어 출발하는 아침 그들이 짊어진 배낭을 보고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무지하게 큰 배낭엔 뭘 잔뜩 넣었는지 빵빵하고 그 위에는 군용 담요도 똘똘

말아 얹었고 옆구리엔 단도까지 차고 그야말로 폼나는 완전무장이었다.

그에 비해 난 동네뒷산 놀러가듯 빈약하기 짝이없는 차림세로 무턱대고

그들을 따라 나선 것이다. 털털거리는 고물 버스에 덕산유도골(?)로 달리는

비포장 길은 출발부터가 고행이다.  그 당시의 지리산은 살아남은 공비가

간간이 출몰하던 시절이고 한 여름 울창한 산속은 백주에도 어두컴컴 했다.

과연 듣던대로 지리산은 웅장하고 만물을 넉넉하게 품어주는 영산이었다.

  

뚜벅 뚜벅 뚜벅 걷고 또 걷고 얼마나 걸어 올랐을까 이미 한나절은 지났을 것이다.

덥고 숨차고 땀은 비 오듯 쏟아지고 갑자기 허기가 몰려오며 온몸의 힘이 죽 빠진다.

더 이상 걷기는 무리라 생각하여 개울가에 배낭을 풀고나서 뭘 좀 먹자고 했다.    

그 친구들도 배낭을 내려놓고 그 속에서 먹을 걸 끄집어낸다.

나는 당연히 가져온 게 없으므로 옆집 친구가 휘휘 젖고 있는 미숫가루를 쳐다보니    

더욱 더 허기가 몰려온다. 좀 줄 줄 알고 기다리던 나는 단 숨에 한 통을 좍 들이키고

입을 닦는 그 친구에게 지금 배가 고파 죽기 직전이니 한 그릇만 달라고 했다

그런데 그 친구 말이 딱 5일분만 계산해서 가져 온 거라 한 번 주고 나면 자신이 한번      

굶어야 하므로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하는 게 아닌가.  필시 아무것도 갖어오지 않은

내가 속으로 되게 얄미웠던 모양이다.

그리고는 주섬주섬 배낭 속에 다시 쑤셔 넣는 것이다.

 

그 제서야 나는 정신이 번쩍 들며 이거 장난이 아니구나 싶었다. 

간식을 챙겨오지 않은 내가 잘 못이지만 어찌됐든 지리산중턱에서 지쳐

쓰러진 동료에게 미숫가루 한 그릇을 줄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하는

그 친구 앞에서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나는 이미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체면이고 뭐고 볼것없이 또 다른 친구에게 같은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친구는 건빵을 먹고 있다가 반 쯤 남은 봉지를 내게 건네주며,

아무리 무전여행이지만 쌀 한 되 박만 달랑 가져오면 어떡하나?

하고 면박을 준다. 뭐라 하든 말든 마치 실성한 놈 처럼 허급지급

건빵을 쑤셔 넣고는 개울 물 한 바가지를 퍼 배가 터지게 들이켰다.

노랬던 하늘이 점차 파란색으로 돌아오고 그제서야 좀 살 것 같았다.

그야말로 난생 처음으로 저승 맛을 보고 온 것 이였다.

 

굶으면 죽는다는 만고의 진리를 그 친구 덕택에 깨닫긴 했지만

미숫가루를 타 먹을 때면 생각나는 그 친구가 왠지 한번 보고 싶다.

다 먹지도 못한 건빵봉지를 건네준 그 의젓했던 또 하나의 친구도 함께

이 여름 시원한 콩국수라도 먹으며 그때 추억을 다시 더듬고 싶다.

 

지리산을 넘어 전라도 군산서 배타고 부여 낙화암을 돌아  속리산 법주사

앞에서 노숙을 하다 양아치들에게 두들겨 맞고 가진 돈과 사진기 뺏기고

그 뒤는 어찌해서 집으로 돌아 왔는지 기억이 희미하다.

 

그러고 보니 몇날 몇일 생사고락을 같이한 친구들인데 이름조차 기억 못 한다니

그 친구들에게 진짜 면목이 없다. 아마 그 뒤  막바로 서울로 가고 주위환경이

싹 바뀌면서 고향에서의 필림이 이것 저것 많이 지워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아무튼 그동안 이 친구들 찾을 방도를 잘 모르고 있었는데  곰 곰 생각하니

14와38 이 같은 동기회로 홈피까지 공유하고 있으니 이 글을 읽어보면

그 친구들은 단박에 알아 볼 것이라 여기면서..   한번 보자 칭구야!

댓글목록

조문용님의 댓글

조문용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친구는 미숫가루로 인생의 쓴맛을 단단히 봤구나
정말 그친구 좋은 교훈을 주었구만
지리산을 넘어 범주사까지 갔다면 며칠을 지냈을 건데
양식 다 떨려지고 난 후 이야기도 궁금하다

서성환님의 댓글

서성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의 댓글 작성일

멋 모르고 따라 올라간 지리산
 넘는것이 죽을 맛이였지 만
 그래도
 전라도 양반들 인심은 후하더라
 용돈 얻어가며 돌아 다녔다

이균님의 댓글

이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서회장님께!

그 시절 이야기를 일기장같이 펼칠 수 있어
정겹고 아름답습니다.
너무나 사실적인 묘사도 백미고요
대단한 기억력이 뒷받침 된 섬세한 터치가 멋있습니다.

그런데 수십 년 지난 지금까지 건빵과 감자,
쌀 한대와 배고픔과 분노의 순간, 성도 기억나지 않는다?!
친척여성은 백씨로 소개 되는데... 이게 뭔가?!

좋은 글을 쓰려면 진실, 논리적인 사고, 동물적인 후각과
상상력이 필요하므로 여러 가지 유추해 볼 수 있는데
일단은 그녀와 그친구, 모두  함께 갔다고해야  끓는데(ㅎㅎㅎ)
혹시 빠진거 아닌가요?
제가 맞춰드릴게요. 실토하시면

당시 무전여행과 배낭여행은 최고의 낭만이고 이벤트였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여건도 아닌데 대단했습니다.
심신이 유약하고 독립심이 없는 청소년에게는
지금도 귄장할만한 레져스포츠겠지요.

서회장님
무더위에 더욱 건강하시고
어머님과 남사장님의 안부를 전합니다.
화이팅!

서성환님의 댓글

서성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의 댓글 작성일

이 작가
재밌게 지어내려고 쓴게 아니라

 죽을 고생한 기억은 생생한데
 두 사람 이름과 얼굴은 생각이 안나
 답답하고 또 한번 보고싶어 올린 글이니

 문학적으로 비평 할 가치야 있것나

임금윤님의 댓글

임금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 임금넘이 기여한 것이 있긴 있나보네.
택도 없는 저놈도 쓰는 편린인가 뼈다군가를 봤으면
앞으로 많은 문우가 나올낀데하고 기다리는 차제에
이리도 훌륭한 추억의 한자락을 살짝 맛보기로 까는구나.
첫 작품 치고는 대단하다 친구야..
기억이 가물가물할 우리 나이에 추억과 회상속에
자신을 되돌아보는것도 참으로 좋은 일이지.
첫술에 금방 배부르지 않는법
다음 작품을 또 기대하겠네.

서성환님의 댓글

서성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의 댓글 작성일

이름도 얼굴도 까묵은
칭구를 찾아 볼까해서
끄적거린 것이지
작품은 무신 작품

아무턴 격려의 말 고맙네 ,  미임박.

* 진대박  (진주사는 김대규 박사)

최수권님의 댓글

최수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서대감 언젠가는 천전 홈피에서 초딩 때 짝사랑한 '서'가를 찾더니 고딩 때는 '백'가라
다음 짝사랑을  기대하며...

근데 그 미숫가루 칭구와 건빵 칭구 찾아질려나?
나도 무척 궁금 하네

서성환님의 댓글

서성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의 댓글 작성일

choi 대감

 내가 지리산 지리산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추억때문에 한번 더
 가 보고 싶어서 그런 것이다.

첫 사랑 소식은  천전 홈피서
 대충 파악 했으므로

위에 이 친구들 찾도록 좀 도와주고
혹시 짐작이라도 가는 동기들은
좀 알려주시게

김대규님의 댓글

김대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굶으면 죽는다는 만고의 진리를
일찍 터득했네.
나는 한참후에 알았는데.

서대감에게 교훈을 준 그 친구
진짜 멋진 친구다.

서대감 글중에
유도골이라는 언급이 있는데
내 생각에는
유덕골이 아닌가 싶다.

서성환님의 댓글

서성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의 댓글 작성일

글쎄 말이야,
내가 지대로 아는게 있어야지

어릴 때 하는일이 어벙하고 멍청하면

덕산유도골서 왔나?  이 소리를
하도마니 들어설라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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