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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光 金容大화백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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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대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08-05-24 22:52 조회9,036회 댓글1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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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光 金容大화백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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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광 화백과 전부터 교분이 있는 杏田을 앞세워 서울서 내려온 최수권과 함께

달마도로서 유명한 청광 화백이 계시는 달마의 집을 찾았다.

달마의 집은 생각보다 규모가 크고 잘 꾸며져 있었고 청광화실을 찾았을 때

너무나 반갑게 맞아 주셔서 민망한 마음이들었다.

 

차 한잔을 앞에두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역시 범인은 아니라는 걸 금방 느꼈다.

얼굴 모습은 너무나 해맑고 젊어보여 연세를 여쭈어보니 61세시란다.

역시 우리 년배로구나 라고 생각하고 더욱 친밀한 느낌이 드는데

이어지는 말씀이 61세이후로 동지 팥죽을 안드셔서 그렇고 실제로는 69세시란다.

이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리저리 끼워 맞추어 보니 틀림없이 69세다.

진주 남중 졸업 5회이시고  우리가 14회니까  9년의 대선배 이시다.

다시 한번 후배로서 큰절을 드렸다.

 

놀라운 것은 중학교 때의 은사님들의 존함을 전부 기억하고 계셨다.

박성욱, 조정래,최형섭, 손덕조... 선생님들의 존함을 모두 기억 하셨다.

나는 아버님이 교직에 계셨기 때문에 알 수 있지만 보통 사람들은 어려운 일이다.

보통의 기를 가진 사람이 그린 달마도는 효험이 없다고 하는데

역시 청광 화백의 기는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를 마신 후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청광 화백은 달마의 집을

이곳 저곳 모두 손수 안내를 해주셨고 마지막에는 우리 세사람에게

달마 목걸이와 달마도를 하나씩 선물해 주셨다.

싯가가 12만원이라는데 이렇게 그냥 받아도 되는 것인지 마음이 무겁다.

같이 기념 촬영한 후 시간을 너무 빼았는 것 같아 서둘러 작별 인사를 하고

청광 화백의 배웅을 받으며 돌아 왔다.

 

안내를 해주시는 동안 여러 가지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

정리를 하여 다음 기회에 소개 하겠습니다.

진주 근처에 이렇게 명성이 높은 분이 있으니

친구들아 시간을 내어 한번씩 들러 보시게.

 

 

<淸光 金容大화백과 달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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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받은 귀한 달마도)


주 소 : 경상남도 고성군 개천면 청광리 592

전 화 : 055-674-6603

청광은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진주남중과 진주농고를 졸업하고 공무원시험에 합격하여

공직 자가 되긴 했으나 태어날 때부터 언청이인 그를 공무원 사회에서 조차 곱지 않은 시선을

냈고 이를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박차고 뛰쳐나와 자살을 결심하게 되고 몇번에 걸처 생을

마감 할려고 결심했으나, 자살이란 본래 죽을 사람 만이 죽게 돼 있어 모진 목숨 죽지 못하고 방황 하게 된다.

그러던 중, 전남 해남 대둔산에 있는 대흥사 사내 암자인 복암사에서 꿈속에 달마대사가 나타나

“지금 네가 보고 있는 나를 그려 많은 중생에게 보시하라”는 꿈을 꾸었고

청광은 이 꿈대로 달마를 그리기로 결심하고 이후부터 달마대사를 그려 전국의 많은 이들에

게 무상(?)보시 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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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가 가르친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緣(연)이다.

인연, 연분 등이 다 이에 해당한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고 천생연분이 되려면 전생에 8만번의 인연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청광의 꿈에 나타났던 달마대사는 아무에게나 우연찮게 생기는 일이 아니었고

이를 통해 청광의 삶은 완전 180도 달라진 삶이 되고 말았다.

현재 청광이 기거하고 있는 ‘달마의 집’ 서실에는 달마도 외에 전국에서 날아든 2만여통의

편지가 쌓여 있으며 그동안 달마의 집을 다녀간 사람의 수가 맥만명이 넘었다.

그런 그가 작은 절을 지어 부처님과 달마를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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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

중국 남북조시대의 선승(禪僧).
별칭 : 보디다르마, 보리달마

중국 선종(禪宗)의 창시자.

범어로는 보디다르마이며 보리달마로 음사하는데, 달마는 그 약칭이다.

남인도(일설에는 페르시아) 향지국의 셋째 왕자로, 후에 대승불교의 승려가 되어 선(禪)에

통달하였다. 

520년경 중국에 들어와 북위의 뤄양에 이르러 동쪽의 쑹산소림사에서 9년간 면벽좌선하고

나서, 사람의 마음은 본래 청정하다는 이(理)를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 선법(禪法)을

제자 혜가에게 전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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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

화엄종. 법상종 등 교학을 중시하는 교종에 대하여, 직관적인 종교체험으로서 선을 중시한

다. 

원래 선종은 석가가 영산설법에서 말없이 꽃을 들자, 제자인 가섭이 그 뜻을 알았다는데서

연유한 것으로, 이심전심. 불립문자를 종지로 삼는다.

종파로 성립된 것은 개조로 전해지는 달마가 650년경 중국에 입국하면서 비롯되는데, 혜가.

홍인. 혜능 등으로 계승되면서 크게 발전하였다.

한국에 들어온 것은 784년(선덕왕) 중국 당나라의 서당지장에게서 법을 받아온 도의가 가지

산문을 개창한 것을 비롯, 이후 선종 9산문이 성립되면서 크게 번창하였다.

고려 전기에는 화엄종. 법상종 등의 교종이 번성하면서 쇠퇴하였다가, 고려 명종 때 보조국

사 지눌이 조계산에 수선사를 세우고, 정혜결사를 설립하면서 다시 번성하였다.

조선 시대 들어와서는 억불숭유 정책에 의해 점차 쇠퇴하였다.

1424년에는 당시 불교 7종파를 선종과 교종의 두 종파로 폐합하면서 조계종. 천태종. 총남

종의 세 종파가 선종으로 단일화되었다가, 1565년(명종 20) 양종제도가 폐지되면서 국가권

력에 의해 종파가 폐지되었다.

불교 암흑기로 불리는 산중 불교시대를 거쳐 휴정과 선수에 중흥되어 이후 활발하게 선법의

계통을 이어가다가, 포교활동이 자유로워진 한말 이후 원종. 임제종등으로 불리다가, 조계종

이라는 종파의 명칭을 확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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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는 뒷산이 달마의 머리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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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상이 전부 달마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국내에서는 유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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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임금윤님의 댓글

임금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대규야.
내가 모르는 우정공백기에도
진작 다방면으로 박식한줄 짐작했다만
이렇게 불심까지 깊은 줄 몰랐네.
제분야 섭렵한
대규 친구가
자랑스럽다.

김대규님의 댓글

김대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금윤이 자네 사는 동네 근처에서
끔찍한 사고가 났다는 보도 이후에
자네가 홈페이지에
보이지 않아 걱정했는데
역시 달마도가 효과가 있나 보네.

그동안 바쁜 일이 있었던가 보지?
바쁘드라도 친구들 걱정 하지 않도록
잠깐씩이라도 들러 주시게.

임금윤님의 댓글

임금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의 댓글 작성일

하필 그 끔찍한 희생자들이
우리 고향 진주사람들이라
나도 그동안 좀 꿀꿀했다.
그리고 수권이는
풍기는 인상이
완전 도통한 사천왕인데
일주문 막 지나서
몽둥이 하나들고
오고가는사람 쬐려보고
서 있으면 딱이다.

박진원님의 댓글

박진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어 ! 이양반들 남의 고향에 신고도 없이 방문하였네 !  김용대화백이 사는 동네와 마주보는 동네,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가의 마을이 바로 나의 고향일세, 물론 현재는 집도 없어졌고 논마지기도 모두 팔아치웠지만 - 그래도 조상들의 산소가 있고 고향사람들이 있다네. 나에게 연락들을 하였으면 따뜻한 점심쯤은 공짜로 나올 수 있었는데 말여.

회장님의 댓글

회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의 댓글 작성일

박교수!
달마대사 초상화를 지니고 있으면 액운이 없어진다고 고성바닥들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혹시 보관하고 계시요?

김대규님의 댓글

김대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박교수
그렇잖아도
박교수 고향집 마을을 지나면서
박교수 이야기를 하였다네.

자네와 같이 하였으면
참 좋았을텐데.

박교수가 태어난 마을에
동서남북으로 달마의 두상을 닮은
산이 있어 그지형이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특히 동쪽의 산은
자세히 보니 눈썹도 있고
눈도 있고 입의 형상도 보이더라.

박교수도
그 기를 받았음이 틀림없다.
가만히 자네의 얼굴을 떠올려보면
달마를 닮은 점이 있다.

박교수
이제까지 몰라봐서 미안하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서성환님의 댓글

서성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의 댓글 작성일

밑에 동근이 칭구가 한 말 잘 들었제?

장사가 잘 된다니 일단 걸어보자
보시는 choi거사와 함께 밥 묵는걸로
퉁 치고

이동근님의 댓글

이동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한 이십년 전에 우리 집사람하고 같이
청광화백을 찾아 달마도를 선물로 받아
여의도  가게벽에 지금까지 걸어두고 있는 데 장사가 꽤나 잘 되더이다
보시금도 좀 내었지만....
무슨 의미보다는 그냥 집에 걸어두면 ,,,,

박진원님의 댓글

박진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칭구들이 나의 고향을 띄워주고 대규가 나를 띄워주니 붕붕 뜨는 느낌일세,
아뿔사 빨리 제자리 찾아야지 -
우리들의 고향은 이디에나 모두 그림같지 않았는가?
산청군, 합천군, 의령군, 고성군, 등등 어디를 가나 산수유려하고 인정이 넘쳤고 . . .
나역시 청광의 달마도를 집에 두고 있기는 하다네,
그러나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달마도, 아스팔트, 시멘트 개량주택, 등등이 없었던 고향이 더 그리워지는 건지 . . .

김대규님의 댓글

김대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우리 마음 속에는
박교수가 말한 고향의 모습이
각인되어 있나보다.

오솔길, 옹기종기 머리 맞댄 초가집,
그 초가집 굴뚝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연기,
어두컴컴한 방, 그리고 메주뜨는 냄새,
뜨끈뜨끈한 아랫목....
이런 모습들인데
지금은 다 사라진 모습들이라
찾아볼 수 없어 아쉽고
그래서 그리움이 더욱 간절해 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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