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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수 없는 추억의 편린- 장 규현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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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금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08-06-06 23:03 조회5,388회 댓글2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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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이면 고생한 1950년  6.25피난생활이.

피난하면 남강건너 금산면의 어느 오지의 후진 다리밑이.

금산면하면 덧붙여서 그의 고향 장규현이 먼저 떠오른다.

오늘은  6월에 피어나는 장규현과의 인연을 추억해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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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폭격으로 진주 시가지가 온통 불바다가 낙동강전투 막바지

시점에 그래도  조금 안전한 곳을 찾는다고 대가족 온식구가  초저녁에

 나동면에서 출발하여 어른가슴팍 깊이의 남강을 어둠속에 건너서,

금산면 어느 오지의 다리밑으로 조용조용 숨어들어  악몽의  3일을

어둠속에서 보낸 피난생활.

 

우는게 일과인 젖먹이가 엄마의 젖까지 모자라 밥물로 겨우 연명 하다보니 

오죽 많이 울었겠는가 마는 내가 다리밑에서 혹시 울기 라도 하는 날이면

쌕쌕이가 언제 폭격할지 모르는  위기상황에서 수십명이 우굴거리는 굴다리밑에서

쫒겨나야 만하는 신세이니 식구들은 나의 처분만 기다리는 아슬아슬한 나날이었다 한다.

다행이도 결정적일때는 효자(?)답게 울지않아 쫒겨나지는 않았다 한다. 우리나이로 내가

두살때 (실제론 1살이 못됨)이니 물론 내가 직접 고생 했다곤 수없지만 그렇다고 기억에

없다고 기막힌 다리밑 피난생활을 고생을 안했다고도 할수없으리라. 

 

 6.25사변하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란 금산면의 피난생활이

어느듯 내가 직접 생생히 체험한양  사실로 머리에 고착화 되어버렸다.

이런 사실을 한반을 하면서 장규현한테 얘기했을때  그도 그곳이 정확히

어딘지, 고향인 안심방인지도 모른채 ,지금은 고생한 굴다리는 커녕 그나마

임금윤이 금산면에서 피난생활을 했는지도 조차도 기억을 못하겠지!

 

나에게는 충주에서 내려오신 나의 10대조 할아버지 선산이 금산면에

있는 걸로 봐서  평택임씨가 남하해 정착한곳이 함양과 진양 금산면이니

어쩌면 나의 진주지역의 뿌리성지라 하겠다. 그후에 금곡면 집현면 명석면

으로 이어지는 조상의 산소로 보아 금산면이 출발인건 사실인 것같다.

 

그리고 어릴때 고향 산마루에 올라가면 엄청나게 크게 선뜻 다가오는 

전설의 고향에서나 나올법한 어마어마한  큰돌산 , 호랑이가 나오고 어느

처녀총각의 귀신 이야기등이 살아 춤추던, 나의 전설의 꿈을 키워준 달만큼

멀리 희미하게 보이던  돌산, 달음산 줄기에서 장규현도 꿈을먹고 

자랐을 금산면이 자리하고 있다. 나에겐 이렇게 귀중한 인연도 규현에겐

별로 중요하지도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인연으로 해서 장규현과

같은반을 하면서 여러가지 시시콜콜한  얘길 많이 나눈셈이다.

 

지금이야 교통이 발달해 전설의 달음산마저 유명한 관광지로 발전하여

진주의 8경에 들어가는 명산 월아산으로 명칭마저 변경되었다하나 그때

만해도 금산면이나 나동면이나 전깃불도 안들어오는 오지아닌가. 그래도

나동면을 거친 남강이 진주시민을  먹이고는 청곡사와 달음산을 휘돌아

아쉬운듯 쳐다보면서 낙동강으로 빠저 나가는 남강의 하류를 이루어 준다.

 

진주에서  가장 산다운 .  달음산 아래에서 꿈을 키운 장규현, 지나 나나

다같이 어려운 농촌환경을 극복한 공통점이 있다만 규현이는 집안의 희망과

기둥인 8남매 맏이, 나는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8남매 막내 (정확히는

 누나와 여동생을 제외하고) 라는 사실, 끼니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지만

풍족하지도 않고 겨우 연명하는 수준의 중농의 형편, 어렵지만 30리길을

다닐 수없어 자취생활을 한다는 , 가끔씩 몰띠고개를 넘어 집현쪽으로

해서 반찬 가질러 간다는것 등등 지금도 그의 고교생활 일부분이 생생하다.

 

하여 인지상정으로 규현이의 일거수를 관심있게 지켜보게 셈이다.

공부는 금산면이 배출한 천재답게 그는 전과목을  골고루 잘하였고

특히 국어와 수학을 잘한 걸로 기억한다.

얘기할 항상 웃다보니 벌어진 윗니 두개가 유난히 기억에 남지만

그는 나보다 훨씬 잘생기고 성격 또한 참으로  소탈하고  좋았다.

그러나 그의 탁월한 능력에 비해 학창시절에 엄청난  두각은 나타내지

않았다해도  판단으로는  언젠가 크게 피어날 대기만성형이란   나는

미리 예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비슷한 성장과정외에도 사고의 폭과

생각이 많은 점에서  나와 닮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고 졸업후엔 나의 한동네 친구 현갑이와 같이 돈이 덜드는 국립

부산대학교 진학했다는 소식이후엔  예외없이 수십년간  소식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러다가 작년에 1438쉼터에서 그를 발견하고 40여년만에 처음으로

 육성통화를 했다. 반갑긴한데 막상 뭐부터 얘기해야할지 몰라 우물쭈물

하다가 정작 나눠야할 말은 한마디도 못하고 목소리만 듣고 끊은 셈이다.

그러나 옛날에 사용하던 말투로 봐서 편안한 모습 그대로였다.

 

또한 사진으로 규현의 현재 모습은 옛날보다 훨신 성숙해진 것같고

좋은 옷걸이에 빼어입으니 이젠 완전 영국 신사같이 듬직해 보였다.

짐작컨데 지금쯤 그는 집안의 장손으로 금산면의 장씨 집안을 우뚝

일으켜 세웠을 것이고  누구보다도 남부럽지 않은 일가를 이뤘을 것이다.

그동안 세상이 좋아 나는 잘생긴 그의 아들  결혼사진도 구경하였고

연말 망년회에서 회장님으로서의 한말씀하시는(?) 장면도 구경하였다.

 

이제 여로모로 꽤나 듬직한 친구

잘 생긴 것만큼이나 능력도 탁월한 인물

산천초목 총천연색보고 자란 촌놈이니 생각도 칼라풀할 것이고

아울러 자연과 더불어 사고도 활짝 열린  무위자연할 것이고

나를 닮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잡혀있을 친구

그는 분명 나의 6월의 사나이 장규현이다.

만나고 싶은 친구중 한사람  장규현

조만간 만나 손이라도 한번잡자.

그때까지나마 건강해라.

 

현충일과 6.25가 있는 6월에 즈음하여--------.

댓글목록

임금윤님의 댓글

임금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동안 추억의 편린을 읽고 격려해 주신 친구여러분들에게
마지막회라는 인사를 드리면서 아울러 정말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동안 여러 친구들에 대한 친소여부를 떠나 같은 반을 하지 못해
글로 표현할 만큼 깊은 추억을 공유하지 못한 친구들에게 미안하고
여러 친구들에 대한 하고 싶은 얘기는 엄청 많으나 흐릿한 기억의 한계와
여러가지 하찮은 이유때문에 편린시리즈는 여기에서 접을까 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동기친구들과의 재미에 푹 빠져 소홀히 한 진중고 뉴욕동문회
쉼터도 물주고 거름주고 가꿔야할 작은 이유도 아울러 있읍니다.
그러나  예전만 못하더라도 내가 1438을 아주 떠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태현님의 댓글

이태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의 댓글 작성일

편린시리즈를 접는다니 아쉽소이다.
그간 아주 재미있게 잘 봤고 옛날로 돌아가 볼 수 있어 좋았는데'''
청 컨대 또 다른 이야기꺼리를 만들어 1438마당에서 자주 만납시다.

임금윤님의 댓글

임금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의 댓글 작성일

참으로 동기 친구이면서 훌륭한 우리의 회장이는 걸 느낀다네.
그동안 별것도 아닌 것에도 여러모로 관심과 애정어린 격려에
참으로 고마움을 표하고 싶네. 그리고 내가 어디 멀리 가겠는가.
뛰어봐야 회장님 손바닥이지. 자주 보도록 할께! 고마워 !

김대규님의 댓글

김대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의 댓글 작성일

추억의 편린을 접을 필요는 없다.
여건이 되면 또 올려라.

기억이란 놈은 요술장이 같은 것이라서
언제 또 멋진 옛날의 추억이
투영되어 나타날지 모른다.

또한 "추억의 편린"란이 있는한
다른 친구들이 바톤을 이어받아
계속 펼쳐 나가게 될 것으로 믿는다.

아울러 금윤이가 보고싶어 할 것같아
답글로 규현이 사진 두장 올릴께.

임금윤님의 댓글

임금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의 댓글 작성일

누구보다 날 속속들이 아는 대규야.
너보다 쉬원찮은 이 임금유니 머리로
감히 훌륭한 친구들과의 추억을 회상해 봤다만
조만간 기억의 한계에 쩔쩔 봉착하기 전에
요기서 시마이하는게 좋을 듯하다.
누가 계속 이어주면 다음에 혹시--------.
그리고 장규현이 사진 잘 봤다. 고맙다.

김상철님의 댓글

김상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금윤이를 통해 규현이의 멋진 모습을 알게 되었네.
어린시절의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무아의 상태로
들어가게 하지요.
옛날에는 나동면까지 갈려면 참으로 먼 길이었지.
건강한 나날 보내기를 바란다.

임금윤님의 댓글

임금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의 댓글 작성일

상철이의 해박한 상식과 살아가는 미국 이야기에 비해
하찮은 이 임금유니의 옛날 먼지 쌓인 고리짝 얘기가
무신 무아상태로 까지야 갔겠냐만
아뭏든 과찬까지해 주니 너무 고맙네.

고의석님의 댓글

고의석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동기들의  숨어 잇는 장점만 근접촬영을 하여
그 친구들을 고운 눈길로 보게 해주어 고맙다.

내게는 
거의 지워져버린 기억들을 
새록새록 살려내어 
여러명의 친구들에게
추억을 만들어준  금윤아
그친구들을 대리하여
아니 내가 그 친구가 되어 감사드린다.

고마워

임금윤님의 댓글

임금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의 댓글 작성일

고의석 친구야.
자네와 나는 고교3년 대학4년 도합 7년을
한울타리에서 같이한 친구다만
한번도 가까이 혹은 같은 반을 못하다보니
자네를 주인공화하지 못해 미안한가운데
이렇게 까지 과찬까지 해주니
눈물나도록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네.
성숙한 자네의 인간미를 알게 되어
여간 큰 기쁨이 아니라네.

장규현님의 댓글

장규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금윤아!!!
어쩜 나보다도 나에 대해 더 잘알고 있네.
너가 금산면과 그런 깊은 인연이 있었다는걸 알지 못했네. 아니, 한번쯤은 들었을 만도 한데 전혀 기억에 없으니,
내머리의 지우개? 아님 건망증?
우리집은 달음산(月牙山) 바로 밑이라, 달음산의 정기와 이슬을 먹고 자랐지.
좋은 말로해서 그렇지, 사실은 우리가 자랄땐 먹을것이 제대로 없었거던.
요즘은 신작로도 나고, 전기 전화도 들어오고 제법 문명의 혜택을 받고 있지만, 그땐 진주엘 갈려면 삼십리 길을 걷던지, 아니면 십리를 걸어 면 소재지에 가서, 문산 ,개양을 거쳐가는 뻐스를 타고 다녔지.
그런 고향도 이젠 다 도회지로 나가고, 새로운 타성받이 한집과, 절(寺) 두개가 있을 뿐이니.
아무도 없는 고향이지만 그래도 미련이 있어 묵혀둔 논이 있어 금년 봄에 일을 좀 벌려 놓았다.
그라고, 너가 팔남매(실제론 십남매) 막내 였다고?
항상 조용하고, 얌전하고, 남을 잘 배려해주는 성격으로 봐서는 장남 같았는데.
하기사, 시작과 끝은 닿아 있으니. 시작이 곧 끝이고, 끝이 곧 시작일지니. 一始無始, 一終無終
친구야!  항상 건강하고 고국에 오면 꼭 연락해라.
내가 가는것 보단, 너가 오는게 빠르겠지?

임금윤님의 댓글

임금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의 댓글 작성일

이제 기억이 조금 나는가?
촌놈 장규현과 촌분 임금유니 나눈
진고 학창시절의 교유를!
너무 탓하지 말게.
이 나이에 무신 캐캐묵은 기억을 해서 뭣에 쓰겠나.
그러나 버릴 수없는 이 인연이 너와 나를 이어주는
참으로 기막힌 연줄인 것을.
모쪼록 만사횡통하고 건강하길 기원한다네.
오늘도 장규현과의 추억을 소중히 생각하면서.

서성환님의 댓글

서성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참 재미나게 읽은 동화였다
 한점 꾸미거나 만들어낸 것이 아니어서 더욱 그렇다
 작가께서 잠시 쉬신다니 아쉽지만 조금 기다려볼 수 밖에..

  그리고 제안컨데
  그동안 연제된 편린의 주인공들께서
  기념주 한잔 마련하실 의향은 없으신지?

임금윤님의 댓글

임금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의 댓글 작성일

나의 고교시절을 기억한다면
참으로 창피한 국어실력이었다네.
그런데 작가라니 거두어 주시게.
그래 여러모로 고맙고 고맙다.

이원표님의 댓글

이원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ㅁㅈㅁㅈ
그동안  고생마이 혔소
잠시  머리  식히고 
좀있다  더재밋는  글 부탁해요
객지에서  항상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빕니다

임금윤님의 댓글

임금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의 댓글 작성일

이렇게 통큰 이해심을 만나는구나.
그래 머리 좀 식히고 더 공부해서 보세나.
아울러 친구도 건강하시게나.

이균님의 댓글

이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임금님 전하!
이 백성은 전하 덕분에 추억과 향수의 정서공화국에 젖어 있습니다.
떠나시다니요.
잡념이 많은 백성이라 얄팍한 감성과 연상되는 기억이 떠오릅니다.
고금으로 영웅호걸들이 떠날 때의 모습은(정치적 부침을 떠나서)
명연설문과 함께 짠한 감동을 주었지요.

신념과 결단성.
용기.
열정.
단념할 수 있는 의지.
너무나 인간적인 것.

임금님의 고별사가(?) 그러하네요.
앉으려고 용을 쓰고, 버티려고 기를 쓰는 맹랑한 세태에 전하의 교지는(?)
묘한 카타르시스와 여운까지 남겨서 아쉽지만 역시 멋과 풍류가 베어있습니다.
임금님 전하!
혹시 맥아더장군의 고별사가 기억나시는지요.
‘추억의 편린’ 은 사라지지도 않고 1438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입니다.
쉬면서 재충전하시고 다시 돌아오실 때 청사초롱 불 밝히겠습니다. 
그동안 좋은 글, 수고 많으셨습니다.

임금윤님의 댓글

임금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의 댓글 작성일

내가 진작 고별사를 쓸까하다가
울산 민초 이균의 표효에 놀라
그래도 이 만큼이나마 끌고 왔다네.
다 친구의 애정어린 관심과 편달에 힘입은바 크다네.
그간 우리외에는 누구도 줏어가지도 않을
추억의 포장지에 감싼  편린이라는 뼈다귀에
일희일비 했다니 괜히 어질어질하다네.
모쪼록 내 이다음 언젠가 또 근질근질할때
다시 찾아 갈테니 청사초롱 딲아 두세나.
내가 이균을 두고 어딜 떠나겠는가.

표영현님의 댓글

표영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금윤아 고맙다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에 만나 그 인연으로 오래 가까이에서 지내면서도 많은 친구들의 아름다운 모습과 행동을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는 데 짧지 않는 기간 먼 땅에서 생존의 힘겨운 여건에서도 긍정적이고 장점을 오래 기억하는 마음이 너무나 향기롭소 가슴이 찡한 문장은 아름답고 세련된 문장이기 보다 진실된 문장이 아니겠소  많은 친구들에 대해 소상한 인연과 아름다운 고교시절의 추억을 회상하게 하고 진주 주위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며 친구들의 생각의 영역을 한반도에 고정시키지 않고 넓은 세계를 생각하게 해준 벗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며 한마디의 댓글에도 성실하게 응답하는 성실한 인격을 존경합니다.
 보잘 것 없는 나에게 칭찬해 주어서 흥분해서 쓰는 답글이 아니라는 것은 다음에 듣기 싫은 글을 보낼 때 응답을 보면 알 수 있으리라 믿소
 자주 얼굴은 보지 못하지만 마음으로도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길 바라오.

임금윤님의 댓글

임금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늘은 표총장대신
제대로 한번 불러보자.
내친구 촌놈 영현아!
보잘것 없는 내글에 대한 너의 답글을 대하면서
참으로 자네의 소박한 진실성이
온몸으로 전달된다네.
박제된 30년
잃어버린 30년이다 보니
남보다는 덜 변질된 깨끗한 추억을
간직했다고는 볼 수있지만
그 추억을 뇌까려본 그 하찮은 글에
과찬까지 해주니 부끄럽네.
그래 마음으로나마
우리의 소박한 이 우정을 이어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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