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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수없는 추억의 편린(2)- 하창식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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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금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08-02-22 08:19 조회6,127회 댓글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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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임금윤그놈이 하창식이 하고도 추억의 편린이 있을까하고 다들 의아해 할지 모르겠다.
사실 나는 3년간 그와 한번이라도 같은반을 해봤다거나 노는 물이 같았다거나 공부를
서로 다툴만큼 서로 잘했다거나 죽고 살기로 한번 싸워봤다거나 졸업후 한번이라도
만났다거나  어느 한구석이라도 통하는  조금의 공통분모도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날까지 하창식만큼 그모습이 뚜렷하게 각인된 친구가 없다고할 만큼
지금껏 그에 대한 나만의 추억이 이상하리만치 잘 간직되어 있기때문이다.
일학년때부터 예의 하창식의 복장은 바지는 밑으로 내려오면서 좁아지는 짧은 홀대바지, 그의 독특한 맨위끈이 보일만큼 눈에 뛰는 검정색 농구화 , 윗단추 한두개는 멋으로 거의 풀고 다니는 상의, 사각진 얼굴위에 니부가리 머리두발, 사회통념이 엄중하고  학교가 기준하는 잣대를 아슬아슬하게 넘어서는 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느 한가진들 촌놈인 나의눈엔 별스런팻션이다 못해
하도 궁금해서 한번은 주먹이 날아올 듯한 그의 인상을 무릅쓰고 용기를 내어 물어 봤는데 예상외로 그는 순진하고 쉬원하게
!이거? 멋있다 아이가! 그라고 유행인기라!  하기에 나는
아 글나!하고 대답한 것이 그와의 평생 나눈 대화의 전부다
하창식이도 이 얘길 기억할까!  아마 십중팔구 모를끼라!
 
그런후로 나는 하창식의 예의 자유분방한 복장과 팻션과 태도가 어느듯 멋있게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런 한편 저렇게 하면 야단맞을 텐데하고 내가 걱정이 앞서는 것이었다. 그런와중에 나와 각별한 규율담당 신중일선생님께서 나를 믿고 하시는 푸념속에 한번은 선생님이 "그놈 꼬라지하고는" 하시길래 겁도없이 나는 "하창식이가 우때서예?"라고 대답했더니 당장 벼락이 치는듯이 "뭐야! 네놈까지 정신상태가 어쩌구 저쩌구 "하시면서 가지고 다니던 몽둥이로 그자리에서 몇대를 얻어 터졌다.
 
아픔보다는 이상하게도 내가 왜 잘못했는지 하창식이가 뭘 잘 못했는지 화가 나서 좀 더 대들다가 몇대 더 얻어 터지곤  그런후로 한동안 신성생님과의 돈독한 관계가 좀 뜸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언젠가는 하창식이는 미를 추구하고 멋을 창조하는 미대쪽으로 가지않을까 내나름대로 예상하게 되었다. 그후 풍문으로 건축과인가 토목과로 갔다는 얘기를 풍문으로 들은 것이 전부이다.
 
그후 수십년이 흐른후 이곳에서 총동창회 명부를 받아보니 무신건설회사  고문인가로 있는 것을 보았다. 아마도 미를 추구하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면 나의 어슬픈 판단이 맞았을테고 아니드래도 그는 멋있는 중늙은이가 되어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혹시 신중일선생님이 살아계신다면 꼭 한번 만나서 물어봐야겠다.<?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아직도 내가 한 하창식이가 우때서예라꼬 한말이 그리도 잘못된 것인지?

왜 얻어 터져야 할 만큼 하창식이와 내가 그리도 잘못했는지를------.

창식아 ! 너는 까맣게 모를끼다만 어쨋건 나는 얻어 터지고만 다 지나간
한떨기 추억의 편린이라네.
아직도 윗단추를 풀고사는 멋쟁이로 살고 있는가 궁금하다
대답 좀 해주라. 

댓글목록

정진환님의 댓글

정진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스라한 추억의 편린이 누구에겐들 없겠는가 마는
추억이 물씬 베어나는 글솜씨는 누구에게나 있는것은 아님가벼
구박사, 고원장, 울산의 이균. 김해영선사, 박교수. 문원장
LA 김상철, 뉴욕의 임금윤 등등 글쟁이를 빰치는 글솜씨를 보면
글 한편 올리려다 슬그머니 뒤꽁무니를 내리기가 여러번이다.
하창식이야 정말 열심히 일하고 성공한 DEVELOPER로 자타가 공인하는 건축전문가이지만
아마도 고등학교 다닐 그당시부터 멋을 창조하는 자질이 풍부했던 모양이다.
비록 우리눈에는 껄렁하게 보였지만 그게 요새 개념으로 보면 개성이고 숨은 자질 "끼"라고
보면 맞을거야
신중일 선생님은 11년전인가 12년전에 돌아 가셨다.
선생님과 나는 고향이 같은 거창이었고 내 외갓집과 선생님의 본가가 이웃이었던 관계로 어릴적 부터
선생님을 알고 지냈으며 졸업후에도 가끔 찾아 뵙곤 했었다.
내가 D증권 진주지점장을 하고 있을 때인데 추석 고향방문길에 선생님 댁을 찾아 갔는데 대문에
검은 리본이 달린 조등이 달려있어 정말로 깜짝 놀랐고 감히 집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서 나와
그 다음날인가 다시 문상을 갔던 기억이 있다.
내가 찾아 갔던날 바로 그날  지병으로 돌아 가셨던 것이다.
친구야
내대답으로 궁금한게 조금은 풀렸나?

임금윤님의 댓글

임금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진환아 고맙다.
짐작은 했다만 막상 듣고보니 이 무슨 청천에 벽력인가.
혹시 이럴 줄알고 차마 일부러 누구에도 묻지도 않았다네.
누구보다도 신중일선생님으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은 나로서는
위에 언급한 매도 소리에 비해 사실은 그렇게 아프진 않았다네.
미워서 때린게 아닌것을 누구보다도 잘알기 때문이었다네.
늦었지만 이렇게라도 슬픔은 속으로 삼키고 삼가 조의를 표한다네.

그리고 하창식이가 성공한 건축가라고 했나?
그렇다면 역시 짐작대로 멋쟁이로구나.
언젠가 신중일선생님묘소에 인사드리러 같이 가자고 해봐야겠구나.

그리고 나까지 글솜씨 좋은부류에 넣어 줘서 고맙긴한데
사실은 허종주선생님의 국어시험엔 맨날 바닥이었다네.
글은 너의 윗글이 수작인델 뭘 그러나!
우쨋거나 잘 지내라 친구야. 고맙다.

임금윤님의 댓글

임금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정도는 가물거려도 괜찮다꼬
퍼지인식이론에도 용납해주니라.
그만하모 총기도 괜찮은 편이다.

그러나 하창식의  댓글이 아직 없는 것을 보니
귀띰해주는 가슴을 여는 친한 친구가 없거나
같이 늙어가는  동기회에 아예 무관심이거나
뭣좀 이루었다고 시건방지거나
사업에 엄청 골치나 바쁘다거나
아예 동기들과는 사이가 그렇고 그렇거나
차마 말못할 사연이 있거나
그 중에 하나겠지만 이 나이에
그렇게 살면 잘사는게 아니지!
이제 잘나고 못나고가 어디있겠나!
그러나 섣부른 판단은 이를것이네.
멋쟁이로 간직한 그와의 추억을
한번 기다려 보리다!

강재우님의 댓글

강재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의 댓글 작성일

창식이 컴맹이라 못봤을 끼다
내가 비서한테 전화해서 복사해서 보라 쿨께
지한테는 컴푸터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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