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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의 현판을 쓴 사람이 누군지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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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대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07-09-04 16:38 조회9,28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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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의 현판을 누가 썼는지 내기가 붙었다.
그 답을 나한테 알아 봐 달라는 부탁을 하여 왔다.
내기가 내기인지라 아는 지식으로 말하기 어려워
자료를 찿아 보았다.
한국일보의 기사를 다음과 같이 복사 합니다.
 
 
 
 
            --- 다   음 ---
 
서예가 정도준씨 "민족정기 부활에 일획 뿌듯"
한국일보 | 기사입력 2003-11-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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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근정전이 제 모습을 찾는 걸 보니 일제에 의해 훼손된 우리 민족의 정기가 다시 살아나는 것 같습니다.”14일 오후 4년에 걸친 보수공사 준공식을 마치고 일반에 공개되는 경복궁근정전을 기다리는 서예가 정도준(56)씨의 감회는 남다르다. 근정전의 상량문을 직접 썼기 때문이다. 상량문은 조선시대 건물을 지을 때 집안의 내력과 축원, 건물을 지은 이들의 명단 등을 담아 대들보에 올려놓는 문서.건물의 기록이기도 할 뿐더러 옛 사람들이 건물의 일부처럼 여겼다.
정씨가 이번에 다시 쓴 상량문은 3가지다. 133년 전 대원군 시절에 쓰인두 문서를 그대로 복원하고 이번에 근정전을 보수하며 쓴 새 한글 문서를추가했다. 원문을 처음 보았을 때 조선 사대부의 기품이 저절로 느껴졌다고 한다.“조선 왕조의 대표 궁궐인 경복궁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물인 근정전 상량문이라 심적 부담도 컸지만 육체적 부담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세가지문서가 각각 10㎙의 엄청난 길이인데다 일부는 종이가 아닌 비단에 써야했기 때문.한 자 한 자 천천히 힘을 주지 않으면 글씨가 제대로 먹지 않았고 중간에한 글자라도 틀리면 전부 새로 써야 했다. 석 줄을 쓰고 나면 한 시간이후딱 지났다. 더구나 붉은 비단은 국내 생산이 거의 중단돼 구하는데 아주애를 먹었다. “우리 궁에 중국산 비단을 올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정씨가 궁의 글씨를 쓴 것은 1999년 창덕궁 진선문 현판부터. 경복궁의 흥례문과 유화문, 경회루, 근정문에도 그의 글씨가 들어 있다. 개인적으로는경남 진주 촉석루의 현판을 쓴 아버지 정현복씨와 역시 여러 번 궁궐 건물의 글씨를 쓴 스승 김충현의 대를 이어 자랑스럽다. 경복궁의 다른 건물들도 문화재청의 요청이 있으면 언제든 쓸 마음이다.상량문은 언젠가 근정전을 다시 고칠 때 후세의 누군가가 열어볼 것이다.
다시는 타의에 의해 우리 민족의 역사가 훼손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이제 내년 독일과 프랑스에서 열릴 자신의 개인전에서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좀더 자랑스레 알릴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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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도 다음의 글을 보고 누군가 혼돈 했던 것 같다.
 
 
DSCN0018.JPG

矗石樓懸板

高城絶 ?大江頭  (고성절?대강두)
冬栢梅花矗石樓  (동백매화촉석루)
若也登臨留勝迹  (약야등임유승적)
請題佳句記吾州  (청제가구기오주)<br>

높은 성 떨어진 벼랑 큰 강 머리인데
동백 꽃 매화 꽃이 촉석루에 피었구나
올라 가 훌융한 자취 남기려거든
청하나니 좋은 시 지어 우리 고을 기념하소



촉석루 2층에는 위 현판 글이 있다.
이 글은 산창군 단성면 남사리에서 태어나 이조 문종 때 영의정을 지낸
문효공 敬齋 河 演이 진주 감사 南智에게 보낸 글이다.
강정 친구가 이분의 문집을 구해 가지고 있다가 이 책 주인은
자네라며 건네 주었다.
부끄럽기도하고 고맙기도 해 모르는 한문 투성이지만 자주 대하며
잠을 설칠 때는 650여년의 시공간을 더듬어 보는 게 요즘의 일상이 됐다.
자랑을 쏟아 미안하지만 이 현판은 나의 아버지가 쓴 글이다.<br>

?한자는 上아래 容자 합친 것 비슷 그 옆에 又 그리고 土 받침인데
몰라서…



진주중고교933 홈페이지 하준규 선배의 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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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재의 현판 사진은 아래와 같습니다.
참고로 촉석루는 1959년 재 창건되었습니다.
(국민학교 4학년땐가 5학년때 공사하는 것을 본 기억이 납니다.)
글자체가 조금 다른 것 같은데...
아마 위의 선배글의 현판은 그 전의 현판이 아닌가 생각 됩니다.
 
 

chockseokru.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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