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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이 가기 전에, 그리고 오월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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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07-04-30 12:17 조회7,049회 댓글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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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벌써 절반의 반을 지나고 있습니다. 정시에 도착한 봄열차는 오색찬란한 화신들을 지천에 풀어두고 산하를 덧칠하며 어디론가 떠나려합니다. 풀 한포기, 나뭇잎하나, 미물인 벌레 한 마리도 자연의 섭리 속에 활기가 넘치고 거리의 패션에도, 만나는 사람들의 표정마다 봄의 향취가 싱그럽습니다. 덩달아서 제 나이를 망각한 이 화상도 역마살이 끼었는지 춘심(春心)으로 흔들거립니다.


지난 ‘당항포 봄멸’에 친구여러분을 만나러 가는 날, 들떠있는 저에게 진주의 김천두군이 혼자서 길나서면 외로울 거라며 진주서 합류하자는 권유로 오랜만에 중학교(진중) 앞을 찾아갔습니다. 때마침 고등학교는 비봉축제로 많은 사람들이 붐볐습니다.

면면들은 낯설었고 주변 환경은 떠돌이의 귀향처럼 생경한 풍경이었습니다.

그때의 건물과 사람들은(?) 간데없고 얄개 시절 추억을 연결해주는 흔적은 운동장과 일부 헐리지 않은 담장뿐이었습니다. 마치 오래된 세트장 위에 젊은 배우들로 바뀐 무대를 지켜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연화산 가는 고속도로 승용차에는 심철영군, 허봉수군, 김천두군, 저와 넷이 동승자가 되었습니다. 세상사 돌아가는 즐겁고 유익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에서 ‘앞으로 우리들에게 소중한 것?’ 은 무엇인지 공동의 관심사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건강해야한다.

친구가 있어야한다.

용체가 있어야한다.

가족이 있어야한다.

소일거리가 있어야한다.’ 고 입을 모았습니다.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겠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수치심과 자괴감에 빠지지 않게 즐겁고 편안하게 살아야 한다’ 는 친구들의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제 머리에 속 들어오는 고견이었습니다. 

                              

 연화산 하산 길의 뒤풀이도 정감이 넘쳐흘렀습니다.

반찬가지와 우거지국도 별미였지만 소주잔을 나누며 맨손으로 돼지고기수육을 앞 다투며 집어먹던 그 맛이 이구동성 일상의 맛보다 특별하다고 했습니다.(살살녹는다)

 아마도 어린시절 고향의 그리운 손맛들이 떠올라서겠지요. 서울의 친구들이 좋아할 거라며 이것저것 챙겨온 진주친구들의 배려해주는 마음이 너무너무 따뜻했습니다.

 한편 얼마 전까지 중환(?)으로 안타깝게 했던 김천두군이 건강한 모습을 보여줘서 친구들은 더없이 반가워했습니다. 의료진의 실수로 뒤바뀐 검사사진 때문에 생사가 엇갈렸던 드라마 같은 투병기를 정작 자신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본인은 얼마나 참담했을까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준비해온 갈치매운탕은 2005년 지리산요리 처럼 여전히 입안에서 감돌았습니다.

그는 영원한 해병이었습니다.

 

홈피에서 좋은 글로만 대하든 친구들, 이름만 듣던 친구들을 만나서 주고받는 소주잔에 오른 취기가 너무 행복했습니다. 체통과 위신을 잠시 내려놓고 학창시절로 돌아간 익살과 해학, 음담과 농지걸이는 묵혀둔 장아찌를 맛보는 것처럼 구수하고 정겨웠습니다.

나이 들어가면 서럽다던데 친구들을 보면서 지나온 세월동안 잊고 살았던 소중한 것들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몇 번더 만날 수 있을까’ 를 대내이며 ‘당항포 봄멸’을 위해 애써주신 서울의 이태현군, 최수권군, 강재우군과 여러 친구들. 외톨이로 돌아가는 나를 동승시켜서 위무해준 마창의 유병영군, 김인규군, 안용기군, 남광웅군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사월이 가기 전에.

                                      **  

그리고 오월이 오면! 강재우군이 만들어준 ‘명예산림보호지도원증’을 써먹으려고 합니다. 배낭을 둘러매고 특권의식(?)을 누려보는 입산금지 명산을 오르고 싶습니다.

산은 산 밑에서 나를 확인하고 중턱에서 나를 시험하고 정상에서 나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행여나 준봉 너머 바다가 보이면 내가 보고 싶었던 사람, 내가 그리워했던 사람, 내게 고마웠던 사람, 내가 미안했던 사람들을 떠올려 보렵니다.

왜 내게 조건 없이 은혜를 베풀었는지, 내가 맹목적인 희생을 강요하지 않았는지, 왜 내게 증오나 원망은 하지 않았는지, 얄미울 정도로 님들에게 무심(무정)했던 내가 서운하지 않았는지, 양심 속에 간직했던 이름들을 하나하나 불러보고 싶습니다. 마음의 빚이 더 무거워 지기 전에 안부전화라도 걸어보렵니다.

‘영원히 잊을 수 없기에 님들을 사랑한다고’ 오월이 오면. 


산 넘어 산길에서 숨이 차면 드러누워 하늘 끝에 아버지를 떠올려보렵니다.

끔찍이도 듣기 싫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그 잔소리. “입 조심 손 조심에 적을 만들지 마라. 부끄럽지 않게 살라.”던 꼰대(?)의 말씀이 ‘말장난 손찌검’이 난무하는 요즘 따라 귓전에서 맴돕니다. 아무래도 이 화상은 지금도 철드는 중인가 봅니다.

아버지께서 즐겨 드셨든 딸기와 바나나. 지금이 제철이라 가슴이 아려옵니다. 어디라도 구경하실 수 있고, 어떤 음식도 드실 수 있는 이승이 천국인데, 가슴에 못질만 해대고 주름살 한번 못 펴드린 게 죄스럽고 억울해서 실큰 울어 볼랍니다. 오월이 오면.

                                                                -

                                   




댓글목록

김상철님의 댓글

김상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균 친구의 글을 읽고 있으면 마치 같이 방문한것 같은
현장감을 느낍니다.  멋있는 글솜씨에 감탄을 하고요.
국민학교 동창인 심철영이도 나오고 반갑다, 모두들.
부모는 살아 계실때 자식들을 끝없이 연민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자식들을 한없는 고통만을 드렸죠.
시간이 지나고 나이 60이 되어서야 조금씩 알게되는게 서글프집니다.
건강하고 즐거운 매일이 되기를 바란다.

이균님의 댓글

이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 화상은  1438주미특파원 김상철 친구의 필력이 더 유려하고 힘이 넘쳐서 항상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님은 앞으론 제발 육학년이라고 하지마세요.
사이버상에 특파원 친구의 글만보곤 아무도 나이를 믿지않을 거예요.
4.50대 중후감이 묻어난다며 다음번  귀국할땐 로멘스가 일어날지 누가 알아요?
안그래도 상철친구가 있었드라면 당항포 앞바다를 바라보면서 어떤 글감을 떠올렸을까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수만리 바다건너 님을 떠올리며 글을 쓸수 있다는  이 순간이 너무 즐겁습니다. 건강하세요. 화이팅!

강재우님의 댓글

강재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두분다 글재주로는 당할 친구들이 없음을 다들 인정합니다
두분의 글을 읽고나면 흡사 소설 한권을 읽은양 많은 상식과 글솜씨에 절로 탄성이 납니다
자주 글 올려주시고 사이버상에서나마 자주봅시다
이균친구 고성에서 헤어지면서 얼굴보지못하고 와서 서운했네  내가 챙겨야 됐는데 말일세
다들 건강들하시게나....

이균님의 댓글

이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재우친구! 북치고 피리불어주면 누구나 어깨들석거리며 신명이 나지요.
항상 친구는 1438친구들이 즐겁고 신명나도록 보이지않게 봉사하는 거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다리가 불편한줄 알고 있었지만  그날 산입구까지 친구가 동행한걸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친구의 수고덕에 많은 친구들을 한번 더 볼수 있었답니다.
재우친구는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겠지만 그래도 또 만나고 싶다면 날 원망하시겠소?
가내 행복하시길 빌면서
장규현회장님, 이동락회장님(산악회)그리고 멍석을 잘 관리해주는 김대규친구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김대규님의 댓글

김대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홈페이지에서라도 자주 친구들을 만나보니 참 좋습니다.
당항포에서 만난 친구들의 잔영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행복 합니다.
기억해 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이균님의 댓글

이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대규친구는 축복받은 고장에서 태어났습니다.
통영은 갈수록 포근하고 낯설지않은 이웃같이 푸근함을 느끼게 하는 해양도시입니다.
남해안에서 유일하게 일몰을 볼수 있는 달아공원의 낙조는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남망산에서 내려다본 코발트바다는 형언할 수 없는 서정과  그리움을 불러일으키죠.
청마와 이병도의 애피소드(?)가 그려졌던 청마거리며, 밤늦은 시간 강구안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쟈니기타'연주음악은 나그네의 발길을 멈추게 했습니다.
서호시장(생선) 아낙네들의 질펀하고 구수한 흥정과 훈훈한 인정은 삶의 할기를 느끼게 해줍디다.
노익장의 치열한 예술혼을 꽃피운 전혁림화백의 화랑, 윤이상의 통영음악제를 핑계삼아 작년에만 여닐곱번을 다녀왔답니다.
예향 통영!  동양의 나폴리 통영!  영원한 그림움과 동경의 통영!
대규친구! 고향 좀 바꾸면 않될까요?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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