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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슬러 써 보는 그 장날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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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홍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07-08-01 20:57 조회6,756회 댓글8건

본문

    
     오늘은 배더리 장날이다.
 
     엄마는 새벽부터 좀 상기되신 표정으로, 모처럼 만에 머리기름도 약간 바르셨다.
     대덕 외갓집 동네 분들 만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도 어제밤 잠을 설쳤다.
     오늘, 난생 처음 까만 베신(운동화) 사주기로 한 날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적갈색 큰 다라이 안에,
     보기만 해도 향그러운 들깨잎 묶음부터 차곡 차곡 담으셨다.
     어제 추려 놓은 소풀 다발도 정성들여 쌓고, 산채나물 데쳐 말린 것도 그 옆에 놓고, 
     그리곤 , 밤 늦도록 곱게 다듬어 놓은 무우를 다라이가 넘치도록 담으셨다.
     조금 빈 틈에 신문지로 똘똘 감싼 빨간 앵두까지 챙겨 넣으셨다.
     아마 앵두는 외숙모님 선물 일게다.
 
     엄마는 다라이 안을 마지막 점검하시더니 뭐가 좀 부족한지 찬장 달걀도 모두 챙기셨다.
     "요새 저 년들은 쳐 먹기만 하지, 알 낳을 생각을 안해."
     며칠전 두 알 쌔벼, 학교 가는 길에 오꼬시 바꿔 먹은 게 뜨끔하지만 그냥 모른체 하자.
 
     "꼭 사와야 돼?! 딱 맞는 걸로...?!"  몇 번이나 다짐하며 표정 살폈는데 걱정 말라는 눈치시다.
     안심해도 되지만, 그래도 두 세번 더 손뼘으로 발길이를 재보시게 했다.
 
     아침 햇살이 마당에 들기도 전에 엄마는 그 무거운 다라이를 이고 사맆을 나서셨다.
     비슷한 때  동네 아지매들도 하나같이 큰 다라이를 이고 ,
     꼭 우리 소풍갈 때 기분처럼, 해맑게 웃고 떠들며 동구 밖을 빠져 나가셨다.
 
     흰 옷 얼핏 검은 옷 얼핏, 파란 벼논 사이를 보였다 사라졌다 하며 지나가는 모습은,
     꼭 먹황새들이 논고동 찾아 줄줄이 옮겨 다니는 모습처럼 아름다왔다.
     그렇게 엄마랑  아지매들은 삼밭골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셨다.
 
     학교에 가서도 내내 베신 생각만 하며 딴 애들 신발만 보고 지냈다.
     비록 지금은 구멍이 조금 난 검정 고무신 이지만 , 내일 되면 모두 내 새신만 쳐다 보겠지...
     생각만 해도 신나 죽겠다.
 
     없는 것 없을 것 같은, 세상 오만게 다 있을 것 같은,
     그 배더리 장이 참 먼 데 있는가 보다.
     아침 일찍가서 저녁때나 와야 하니.......
 
     학교 파하고 동구밖에 올망졸망 앉아 마냥 기다렸다.
     어떤 애는  필통을 기다리고, 어떤 애는 새 벤또를 기다리고, 어떤 애는 막연히 그냥 기다리고......
     그런데 규야가 안 보인다.
     규야 엄마가 코뿔 때문에 오늘 장에 못 가셨단다. 안 됐다. 괜스리 미안하다.
     내일 만나면, 요 앞전 딱지 빚진 거 안 갚아도 된다고 그래야 겠다.
 
     서산 마루에 해가 한 뼘 정도 걸렸을 무렵, 드디어 삼밭골을 돌아 줄줄이 나타나셨다.
     또 먹황새들 춤추듯, 파란 벼논 사이를 지나 우리 곁으로 오셨다.
     "자 ..네 베신 " 홀쭉해진 다라이 에서 제일 먼저 베신 부터 꺼내신다.
     다라이 안에 보니 전부 보물 천지다.
     파래에, 꼬막에 ,석화에, 쭈꾸미에.........
     두툼한 갈치도 몇마리 보인다. 방화촌 갈치댁 아지매 것보다 훨씬 크고 더 싱싱하다.
     역시 엄마는 못 하는 게 없으시다. 
 
     그런 엄마도 몹시 시장하신가 보다.
     집 들어 서자마자 시근밥 부터 챙기셨다 .
 
     그런데 신이 좀 크다. 아침에 그렇게 쟀는데......
     어떻게 할까?
     엄마는  옷이건 신이건 늘상 큰 것만 사 오시곤 하는 게 탈이다.
     그때마다, " 니는 자꾸 큰다 아이가?....."  그게 답이셨다.
     베신 크다 해봐야 또 같은 얘기시겠지....,
     그 보다, 안 맞다고 하면, 다음 다음 장날 까지 또 기다려야 하는 게 더 불안하다.
     " 어때, 잘 맞냐?.."   " 응.."
 
     그러곤, 난 계속 발끝을 꼬무락 거렸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계속 움직이다 보면 , 엄마 말씀처럼 발이 좀 더 빨리 커지지 않을까 하고.......
 
     ..........................................................................................................................................
 
     일기 쓰는 사이  50년을 훌쩍 뛰어 넘었다.
     아침,  인사하고 나가는 아들녀석 신발 뒷꽁무니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해 본다. 
     [ 저 나이키 몇 십 컬레를 안겨 주면, 우리 애도 그 옛날 나만큼 신나 할려나?........] 
     [ 나도 엄마가 베신 사준 것 만큼 했다 싶을려면, 저런 나이키 몇 백 컬레 정도로 될 수 있을려나?........]
 
 

댓글목록

김대규님의 댓글

김대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형편은 어려웠어도
마음이 따뜻하던 그시절.
김홍주 친구의 글을 통하여
그 시절을 다녀 왔다.
근데, 우리 친구들 왠 글을 이렇게
잘쓰냐?

김상철님의 댓글

김상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홍주 친구는  따뜻하고 포근한 글을 너무나 잘 쓰네.
아동문학 같은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50년전으로 돌아가 그시절의 향수를 다시 맡보게 해주어 고마워.
무더운 여름철 잘 이기기를.

장규현님의 댓글

장규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우리의 어린 시절들이 장소만 약간 바뀌었을뿐 와 그리 닮았노.

검정 운동화 한켈레면 그땐 천하를 얻은듯 하였는데......

인간이 용렬해서 그런지, 아님 노탐인지,  채워도 채워도 모자란듯 하니....

예쁜글 잘 읽었다.  가슴에 잔잔한 물결이 이는듯....

김홍주님의 댓글

김홍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여러 친구님들 고맙습니다. 부끄러운 글 인데 좋게 보아 주시니.....
아마 우리 서로가 비슷한 정서로 살아 온 세대라서 그런가 봅니다.
어렵고 힘 들었지만, 그래도 우린 행복한 세대를 살았지요.
요즘 세대에 비하면 기회가 많아서.......
비록 작고 미흡하긴 해도, 뭔가 이루었구나하는
보람이라도 느낄 수있는 세대니깐요.

언제나 행복한 마음으로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이균님의 댓글

이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에어컨을 틀어도 덥다고 투덜대며 호사를 부리는 이 화상에게 영혼을 일깨워준 청량제 같은 아름다운 글 풍경입니다. 가슴속에 억 겹으로 잠겨있던 한과 그리움, 가난했지만 정겨웠던 시절, 역경을 감내했던 동네친구들, 땅콩 줄기 같은 파노라마를 떠오르게 합니다.     
가난과 배고픔에 휘둘렸지만 우리는 그때 아무 힘도 없는 철부지로 숙명적이었지요. 꽁보리밥, 쌩된장, 풋고추에도 감지덕지했습니다. 설빔 추석빔 투정에다 베신 고무신타령으로 어머니를 복아 대든 철부지등살에도 채근한번 안하시고 남몰래 한숨 지셨던 우리네 어머님들. 모깃불(?) 피워두고 평상위에 할머니, 어머니 팔베개삼아 밤하늘별을 해든 그 시절이 아득한 동화가 되었습니다. 인생 일촌광음이라더니.
감꽃을 실로 꿰맨 듯이,  추억의 구슬로 엮은 글 잘 읽었습니다. 건강하세요.

표영현님의 댓글

표영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홍주 친구 덕분에 어렵지만 꿈을 먹고 살던 시절을 회상할 수 있어 고맙소 가슴이 찡하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순간을 많이 만들어주길 바랍니다.

문형기님의 댓글

문형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최근에 박완서씨의 "호미"를 읽고 있는데
시골의 전원생활의 얘기들이 많아 공감을 하고 있는데...

홍주친구의 글보다는 맘에 와닿지는 않았다오.
소중하고 아름다운 가장 깊숙한 곳을 일깨워 주심에
감사드리고
오늘 
이 페이지에 온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홍주친구!
소리도 없이
어느 날
서울로 갔더이다.

무더운 날씨에 건강유의하고 언제 한 번 만나고 싶다.
아~
학창시절의 추억도 한토막 있긴한데....

김홍주님의 댓글

김홍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친구님들 멀리 있어 오래 동안 보지도 못 했는데 여기서 뵙게 되니 너무 반갑구료.
그간 건강히 잘 들 지내시죠?......어떡허나? 한참 만에 보면 서로 늙어 보인다던데.......
이 균친구, 영현이 친구, 형기친구 정 담긴 글 대하니........
감꽃 꿰어 목에 걸고 꿈을 먹고 살던 그 시절이 다시 떠오르네......

여러 면에서 미안해요.
A4 용지 따라 서울 부산 대구 울산등으로 막 옮겨 살다 보니,
사랑하는 분들 제대로 돌아 보지도 못한 세월이었네요.......[묵고 살 끼라고...ㅎㅎㅎ]

삶의 여정중 맑았던 토막들을 떠 올리며,
이제 사람 사랑하는 일부터 새로 배워 나가렵니다.

늘 즐거운 나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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