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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뱃돈을 주는 나이가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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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상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07-02-21 10:03 조회7,892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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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목요일 퇴근때 일어난 일입니다.
미국 대형약국으로 가면 계산하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어 기다르는 것이
싫어서 우리나라 약사가 운영하는 조그마한 약국으로 갔는데 늦은 시간이라
아르바이트 하는 젊은 여대생이 혼자 있었는데 “간장약 하나 주이소” 하니까
반응이 없어서 우리나라 말이 서툴은 미국에서 태어난 2세로 생각하고 영어로
“ I need a stuff of the injection into the anus in order to clean something” 
“ 아, 아저씨 관장제가 필요하군요.  그런데 왜, 간장제라고 해요.  간장약은
간( Liver )이 나쁠때 먹는 약인데요”
 
그때 영어의  Enema ( 관장제 )의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고 경상도 발음때문에
생긴 해프닝 이었습니다.
오래전에 김영삼 전대통령께서 하신 말이 떠올랐습니다.
“제주도를 강간 (관광 )도시로 건설해야 합니다”
 
꽃이 피고 지고,  만나고 헤어지고, 생성이 있고 소멸이 있는 것은 자연의 순환
법칙입니다.
올해의 설날도 지나갔군요.  잘 지내셨죠?
 
오래전에 살던 고향 집의 구석에 조그마한 목용탕이 있었습니다.
어릴적에는 설과 추석 전날에 장작불로 가마솥의 물을 끓이고 큰 양동이에
준비해둔 찬물과 섞어서 일년에 두번 가족 전원이 목욕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떡국을 하기 위한 가래떡은 어머니와 같이 물에 불린 깨끗한 쌀을 들고
방앗간으로 가서 어머니는 제사 준비를 위해 먼저 집에 가시고 혼자서
순서를 기다렸다가 김이 모라모락 나는 가래떡을 가지고 왔던 적도 있고요.
 
설날을 맞으며 제일 즐거웠던 것은 설날 아침에 입고 신을 설빔인 새 옷과
새 신을 머리 위에 두고 제야의 밤을 보냈던 추억 입니다.
물론 세뱃돈을 받을때의 기분은 말할것도 없고요.
 
머리에 기억할 수 있는 수많은 어린시절의 설날이 나에게는 있지만 미국에서
자라는 우리 아들들은 이곳에서 분위기를 느낄 수 없어 우리나라에서 몸으로
직접 설날을 한번쯤 체험하게 해줄까 계획했다가 포기한적이 있습니다.
 
아들들이 10살, 7살 정도의 나이때 미국의 긴 여름방학을 고향 진주에서
보낸 적이 있습니다.  시골에서 특별히 할 일도 없고 날은 덥고 아파트에서
같은 방을 쓰니까 매일 부딪쳤던 것 같습니다.
 
“ 야야, 힘들어서  너거 아들 못보것다.  형제들이 우찌 그리도 싸우냐.
너거들 하고 같이 안오면 아들들만 보내지 마라.”    진주의 어머님이
손자들을 보는 것이 힘들어서 국제전화로 틈만나면 하소연 한 내용입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아름다운 우리의 설날 모습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습니다. 조그마한 도시에서 하루 하루가 지루한것 같고, 우리나라의
문화와 불교를 아르켜주기 위해 그당시 송광사의 Temple Stay  프로그램
4박 5일에 보냈습니다.  마감이 되었으나 불임암에 법정스님이 그때 계셨기에
힘 좀 빌렸습니다.
 
미국에서 송광사 사무실로 전화를 하면 우리말이 서투른 둘째 아들이
가부좌를 매일 해야하니까 " 엄마, 발가(이) 아파" 하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참으로 세월이 빠르군요.
 
당분간 자리를 비우려고 합니다.  이달초 계획했던 출장이 미루어저
이제 시작을 해야 하고 설날에 뵙지 못한 부모님을 찾아 뵙고 인사를 드려야
할것 같습니다.
돌아온후 졸문을 다시 올리겠습니다.
 
건강하시고  좋은 하루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댓글목록

김상철님의 댓글

김상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사장,
고맙다, 매번 부탁을 하네.
똑똑한 아들 둔 덕분으로 비싼 저녁 꼭 한턱 내라.
설 잘 지내고 업무 시작했겠네.  나도 이제 퇴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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