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夕 素考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장규현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06-10-08 09:42 조회8,542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秋夕 素考
금년엔 윤달이 있어 추석이 늦었지만 보통은 9월 초,중순이면 추석이다.
추석이란 명절도 그 색깔이 점점 퇴색하여 해외 여행을 가기도하고, 국내유명한 관광지에 가서, 콘도에서 차례상 주문하여, 경향각지에 흩어져 있는 조상님들께 대강 몇번 절하고, 단풍 구경도 하고, 기분나면 골프채 몇번 흔들고 오는, 그야말로 황금 연휴가 되어 버렸지만, 불과 30-40년 전에는 그야말로 년중 최고의 명절이었다.
요즘에는 아들들이 서울이다, 부산이다 하며 대도시에 살다보니, 역귀성이다하여 부모님들이 아들들을 찾아가기도 하지만, 옛날(3,4십년전)에는 거의가 集姓村에서 함께 모여 살았기에, 도회지에 돈벌러 갔던 아들,딸 들이 시외뻐스타고,완행열차 타고, 錦衣還鄕한 듯 보따리 보따리 들고 올때면, 그 안에 든 선물이 뭔지 왜 그리도 궁금 하였던지!
풀어 헤쳐보면 과자셑트나, 비누 셑트가 고작이었고, 어쩌다 동생들 아크릴 쉐타나,나이롱 양말, 몽탁양말이 나오면 그건 큰 선물이었죠.
나이롱 양말은 그야 말로 문수가 없어, 어른 아이 할것없이 까짓꺼 대~충 끼어신으면 맞게 모두가 십문칠이었고, 그보다 조금 뒤에 나온 몽탁 양말은 포리에스텔 소재로 약간의 트위스트를 주어 만든 撚絲양말로서, 그건 그런대로 어른아이 구별이 있었죠. 그런데 이놈이 글쎄, 모양도 그럴싸하고, 두께도 두꺼워, 겨울 양말로 적당 할듯 한데, 이게 도무지 보온이 안되어 그걸 신고 학교엘 갈라치면, 얇은 베운동화 사이로 스며 들어오는 寒氣는 신은거나 안신은 거나 그게 그거였죠. 그건 또 신으면 신을수록 반질반질해지고 헤지지도 않아.
맘에둔 처녀 총각이 도회지에 갔다가 명절이라고 오면, 며칠전부터 설레는 마음 둘곳을 몰라, 가슴은 방망이 질을 하고, 어찌하여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만들어 볼까하고 온갖궁리하다가, 막상 만나면, 한번 만나자는 말한마디 건네보지 못하고 얼굴만 붉어져, 애써 관심 없는척 돌아서면, "아이구 못난놈!" 하고 스스로 자책만 하였지.
추석 이삼일 전부터, 동네 어른들은 밤새 새끼줄 꼬아, 그넷줄 만들어 동네어귀 느티나무에 적당히 매달아 놓으면, 어른 아이 할것없이 외그네에, 쌍그네 한번씩 타보고, 밤이되면 大村에선 노래자랑이 있어 시험중인 마이크 소리에 괜스레 대낮부터 가슴이 설레이고, 평생 잡아보지 못했던 마이크 잡고 한곡조 뽑고나면, 쑥스러움 반, 으쓱함 반으로 얼굴이 달아오르고, 요행히 등수에라도 들어, 양은냄비 하나라도 걸칠라치면, 동네에선 가수났다고 자랑이 대단하였지.
요즘에야 벼의 품종이 많이 개량 되어 조생종도 있고 , 또 그런대로 살림살이가 넉넉하여, 끼니 걱정이 별로 없지만, 그땐 추석이 돌아와도, 조상님께 메한그릇 제대로 올릴 쌀이 없었죠.
"부잣집 나락이 먼저팬다"고 부잣집에야 양식도 넉넉하고, 모심기도 다른 사람보다 일찍하여 벼도 익었는데, 없는 집에야 남의 일 다해주고 늦게 벼를 심다보면, 벼익는 것도 늦어 어쩔수 없이 채 익지도 않은 나락 베어, 쪄서 말려, 디딜방아에 찧어(찐쌀) 멥밥을 해놓으면, 그 고소한 맛이란 온 동네가 구수한 향기로 가득했죠.
금년에도 고향 찾은 친구들! 고향 잘다녀 오시고, 돌아가신 조상님들께 후한 제사상 차릴 요량 하지 마시고 농사지어 좋은놈 골라 아들딸 들에게 바리바리 싸주시고, 못난 무지랭이만 드시는 살아계신 부모님께 효도 합시다.
저도 어쩌다 보니 이곳 서울에서 명절을 쉬게되어, 연휴라해도 막상 할 일이 없어 부질없는 생각 한번 해 봤심더.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금년엔 윤달이 있어 추석이 늦었지만 보통은 9월 초,중순이면 추석이다.
추석이란 명절도 그 색깔이 점점 퇴색하여 해외 여행을 가기도하고, 국내유명한 관광지에 가서, 콘도에서 차례상 주문하여, 경향각지에 흩어져 있는 조상님들께 대강 몇번 절하고, 단풍 구경도 하고, 기분나면 골프채 몇번 흔들고 오는, 그야말로 황금 연휴가 되어 버렸지만, 불과 30-40년 전에는 그야말로 년중 최고의 명절이었다.
요즘에는 아들들이 서울이다, 부산이다 하며 대도시에 살다보니, 역귀성이다하여 부모님들이 아들들을 찾아가기도 하지만, 옛날(3,4십년전)에는 거의가 集姓村에서 함께 모여 살았기에, 도회지에 돈벌러 갔던 아들,딸 들이 시외뻐스타고,완행열차 타고, 錦衣還鄕한 듯 보따리 보따리 들고 올때면, 그 안에 든 선물이 뭔지 왜 그리도 궁금 하였던지!
풀어 헤쳐보면 과자셑트나, 비누 셑트가 고작이었고, 어쩌다 동생들 아크릴 쉐타나,나이롱 양말, 몽탁양말이 나오면 그건 큰 선물이었죠.
나이롱 양말은 그야 말로 문수가 없어, 어른 아이 할것없이 까짓꺼 대~충 끼어신으면 맞게 모두가 십문칠이었고, 그보다 조금 뒤에 나온 몽탁 양말은 포리에스텔 소재로 약간의 트위스트를 주어 만든 撚絲양말로서, 그건 그런대로 어른아이 구별이 있었죠. 그런데 이놈이 글쎄, 모양도 그럴싸하고, 두께도 두꺼워, 겨울 양말로 적당 할듯 한데, 이게 도무지 보온이 안되어 그걸 신고 학교엘 갈라치면, 얇은 베운동화 사이로 스며 들어오는 寒氣는 신은거나 안신은 거나 그게 그거였죠. 그건 또 신으면 신을수록 반질반질해지고 헤지지도 않아.
맘에둔 처녀 총각이 도회지에 갔다가 명절이라고 오면, 며칠전부터 설레는 마음 둘곳을 몰라, 가슴은 방망이 질을 하고, 어찌하여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만들어 볼까하고 온갖궁리하다가, 막상 만나면, 한번 만나자는 말한마디 건네보지 못하고 얼굴만 붉어져, 애써 관심 없는척 돌아서면, "아이구 못난놈!" 하고 스스로 자책만 하였지.
추석 이삼일 전부터, 동네 어른들은 밤새 새끼줄 꼬아, 그넷줄 만들어 동네어귀 느티나무에 적당히 매달아 놓으면, 어른 아이 할것없이 외그네에, 쌍그네 한번씩 타보고, 밤이되면 大村에선 노래자랑이 있어 시험중인 마이크 소리에 괜스레 대낮부터 가슴이 설레이고, 평생 잡아보지 못했던 마이크 잡고 한곡조 뽑고나면, 쑥스러움 반, 으쓱함 반으로 얼굴이 달아오르고, 요행히 등수에라도 들어, 양은냄비 하나라도 걸칠라치면, 동네에선 가수났다고 자랑이 대단하였지.
요즘에야 벼의 품종이 많이 개량 되어 조생종도 있고 , 또 그런대로 살림살이가 넉넉하여, 끼니 걱정이 별로 없지만, 그땐 추석이 돌아와도, 조상님께 메한그릇 제대로 올릴 쌀이 없었죠.
"부잣집 나락이 먼저팬다"고 부잣집에야 양식도 넉넉하고, 모심기도 다른 사람보다 일찍하여 벼도 익었는데, 없는 집에야 남의 일 다해주고 늦게 벼를 심다보면, 벼익는 것도 늦어 어쩔수 없이 채 익지도 않은 나락 베어, 쪄서 말려, 디딜방아에 찧어(찐쌀) 멥밥을 해놓으면, 그 고소한 맛이란 온 동네가 구수한 향기로 가득했죠.
금년에도 고향 찾은 친구들! 고향 잘다녀 오시고, 돌아가신 조상님들께 후한 제사상 차릴 요량 하지 마시고 농사지어 좋은놈 골라 아들딸 들에게 바리바리 싸주시고, 못난 무지랭이만 드시는 살아계신 부모님께 효도 합시다.
저도 어쩌다 보니 이곳 서울에서 명절을 쉬게되어, 연휴라해도 막상 할 일이 없어 부질없는 생각 한번 해 봤심더.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