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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받은 청개구리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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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06-07-06 02:35 조회8,291회 댓글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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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저는 시골에서 육개월정도 귀향살이를 마치고 막 울산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cjk홈피를 통하여 여러분의 근황과 영광스럽고 즐거운 소식들을 접하며 웃는 순간이 유일한 즐거움이었습니다. 마치 격리시설에서 받아보는 신문같았습니다. 이런 저에게 주변의 사람들은 좋은 물, 맑은 공기에 새소리를 벗삼아 한세월 주유천하(?) 하며 도원경에 빠졌다가 이제 정신들어서 나타났다고 염장을 쳐댑니다.


사실 저는 고향 한 친구 심부름이라도 돕겠다고 선거판에 불나비처럼 날아들었다가 못볼 것도 보았고, 분에 넘치는 과분한 경험과 황당하고 다양한 인간상들을 접해보며 귀한 공부까지 배웠습니다. 그 친구는 제 능력으로는 가질 수 없는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라 제가 어딜가서 낭패를 당할때마다 그친구 이름을 팔며 기를 펴고 우쭐됐습니다. 이참에 그동안의 무임승차(?)를 탕감받을 요량으로 이것 저것 어설프게 설쳤습니다. 아래 글은 선거 홍보용 홈피에 올렸던 그 친구와 저의 어릴적 추억 한 토막입니다.            

                                     * * 


초등학교 5학년 봄소풍 때가 떠오릅니다.

그때는 남강변 둑길을 따라 함안군 법수면 강 건너인 돈대산으로 갔습니다. 5학년 4반 우리 반은 약50명 이었는데 지금 잘 포장된 길로 승용차가 달리는 시간이면 조깅할 정도의 거리지만 개구쟁이 잰걸음으로는 한참을 걸어야 했습니다. 지금이나 그때도 봄날은 심술퉁이 시누이처럼 쌀쌀했고 강바람에 날려 오는 모래바람 때문에 가늘게 눈을 떠곤 했습니다. 돈대산에 도착하자 인원점검을 마친 담임선생님께서는 주의말씀을 두 번 세 번 하셨습니다.

 

“첫째, 도시락은 점심시간 전엔(12시) 먹지 말 것.

둘째, 장소를 이탈할 때는 반드시 선생님의 허락을 받을 것.

셋째, 강에 들어가서 수영을 하지 말 것.

넷째, 만약 이런 행동을 보고 나한테 알리지 않거나 옆에 있는 사람은 혼날 줄 알아라!

      알겠나?!”

     “네!”(일동)

 

담임 선생님은 근엄하게 엄포를 놓으셨습니다.

하지만 훈시가 끝나기가 무섭게 나와 S군은 도시락부터 까먹었습니다. 당시 소풍날의 특식 메뉴라고 해야 콩 깔린 보리밥도시락에 단무지와 오이장아찌, 삶은 계란 한개, 사이다 한 병이 전부였습니다. 배가 부른 두 늠은(?) 홀랑 옷을 벗어버리고 알몸으로 강물에 뛰어들려는데 C군이 한사코 말렸습니다.


“선생님한테 시껍한데이.”

“금방 나오께.”

“아- 들이 일라주모 우짜기고?”

“니는 안 보이는 데 가 있어라.”

“다른 반 아이들이 일러준다 아이가.” 

“괜찮다, 누가 그라것노?”


감히 선생님 말씀을 거역하고 강물에 뛰어들었으니 구경하는 아이들은 재미있어하는편 부러운 눈으로 악동을 지켜보았습니다. 한참동안을 첨벙거리며 물속으로 자맥질을 하다가 강가로 돌아보니 아이들은 간데없고 C군 혼자서서 빨리 나오라며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 알았데이! 우짜기고?! 옷은 아 - 들이 각고 갔다!”


우리 반 남녀아이들이 모여 않아 손수건놀이를 하는 가운데로 나는 알몸이 되어 두 손으로 앞을 가린 채 불려나갔습니다. 낭창거리는 대나무회초리가 종아리에 닿을 때마다 고통스러워서 손을 내리다가 여자아이들을 의식해서 재빨리 손으로 앞가리기를 반복했습니다. 내 모습은 깡충거리는 원숭이 형상같았습니다. 회초리의 다음차례는 C군이었습니다.


그는 밀고(?)하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손바닥과 종아리를 번갈아가며 맞았습니다. C군은 일그러진 얼굴로 고통스러워했지만 끝까지 선생님께는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마음이였지만 내가 맞을 때보다 더 가슴이 아팠습니다. 참지 못한 나는 울음을 터트리고 선생님께 매달려서 잘못했다고 빌었습니다. 그제야 회초리는 멈추었습니다. 선생님의 눈언저리에도 눈물이 맺혀있었습니다. 소풍을 마친 월요일, 선생님께서는 우리 두 사람을 부르시고 공책과 책받침, 연필을 상으로 주신다면서 “왜 혼자 강가에 서서 매를 맞았느냐.”고 C군에게 물으셨습니다.


“헤엄치다가 다리 쥐나모 죽십니더.

누가 도와줄 깁니꺼?”


지그시 눈을 감으셨던 선생님, 우리 둘의 볼을 살짝 꼬집어주셨습니다. 

수십 년 세월에 이끼 낀 ‘청개구리상’의 추억 속에서 대견해하시던 선생님모습과 눈만 끔벅거리던 C군의 표정이 오버랩 됩니다.

 

친구야, 그때 미안했어! 고마워!

          * *


무소속으로 당선된 그 친구는 지난 7월 3일 취임식을 마쳤습니다. 그런데 취임식장은 마치 불난 호떡집같았습니다. 선거캠프를 차릴당시는 채 50명도 없었는데 구백명이나 몰려 왔습니다. 저마다 공로자요 지하당 조직 밀사인양 무용담을 털어놨습니다. 식장에 들어갈 엄두도 못낸 위인은 밖에서 서성데는 게 오히려 마음이 편했습니다. 상대편 장졸들까지 호위무사를 자처하고, 초대받지 못한 블랙리스트 인물들이 좌석을 점령하고, 편은 못들어주지만 중용을 취한다던 기회주의 군상들이 취임식장 주변을 어지렵혔습니다. 재미있는 구경거리였습니다.

갑자기 영화제목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가 떠올랐습니다.

                                         -

                   


 

댓글목록

표영현님의 댓글

표영현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아름다운 추억을 가진 자는 행복합니다. 먼 곳에서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순수한 우정을 위해 헌신하는 벗의 마음을 가슴 찡한 추억을 보면서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 같습니다. 지난 상경시 소주 한 잔 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더 건강한 모습을 보길 바랍니다.

이균님의 댓글

이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바쁜 와중에도 고향집에 들려서 힘을 모아주시고 위인을 격려해주신 표영현 친구와 사모님, 고속버스로 서울친구들을 텅 빈 유세장까지 인솔해 준 안홍식 친구, 처갓집식구들에게 미사일전화를(?) 거듭 해준 진주의 김천문 친구, 용추계곡에서 돌아가는 내 뒷모습을 보고 마음조리며 용을 써준 수원의 서성환 친구, 후보자보다 더 날 볶아대며 건강약제까지 챙겨준 진주의 김천두 친구, 충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 내리막 인생길에 친구여러분의 격려와 성원을 받았던 그때가 행복한 순간 이였습니다. 태풍이 휩쓸고 간 적막한 바다, 쓸쓸한 겨울 해수욕장 풍경 같은 이 늠의 비좁은 가슴에 친구여러분의 따뜻한 정을 영원히 채워두겠습니다. 건강하세요. 고맙습니다.     
   

서성환님의 댓글

서성환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평생의 후회가 돈을 많이 못 번것도 아니고 양귀비같은 여자와 못 놀아서도 아니고 단지 모험을 해보지 못한 것이라고 노인들 대부분이 말했다는구먼 그 참 곱씹어보면 참으로 맞는 말이제?
휙 바람따라 히말라야고 안데스를 한바꾸 돌고 싶어도 걸리는게
왜 그리많은지.. 그저 그렇게 살다 사라질 목숨인데 말이다.
자네는 아직 모험을 즐길 용기가 있으니 복받은 친구다.

강재우님의 댓글

강재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용추계곡에서 멀리서온 친구를 챙기 주지못해서 미안하다/
다음기회 좋은 자리 한번만들께.. 건강해라...

정영길님의 댓글

정영길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이균친구 지난번선거에 많은노력으로 결과가 좋았다는것을 늦게나마 인사드리오며 의령오면 한번 만나기를 기대했었는데 ?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이균님의 댓글

이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내 고향에 오셔서 수고하시는 정영길친구님! 의령이 타향인데 이 화상은 정말 무심하고 인정머리 없는 늠이라고 자책하고 있습니다. 악당을 무찌르고 석양에 사라지는 건맨처럼 불난 호떡집에서 없어지는 자신과 비교해보는 망상과 착각 속에 빠져있었습니다. 용서바랍니다. 고향가면 제일먼저 찾아뵙겠습니다. 그때까지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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