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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사람을 모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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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05-09-14 17:26 조회9,055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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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건물이 바뀌었다며.”

“교문 앞 그 구멍가게, 아저씨, 아줌마, 지금도 있을까.”

“들락거릴 때가 중3이였지.”

“제는 그때 벌써 개비담배 외상장부에 달고 다녔어.”

“야, 너 뗌에 배웠어. 뻐끔담배! “맞아, 냉수 먹여가며 가르쳤잖아.”

“가방 제피고(?) 풀빵 수십 개 삼킨 놈은 누군데.”

“나 혼자 먹었냐?”

“객지서 온 놈들 운동후엔 더 허기졌지. 난 집에서 무조건 튀어 나왔고.”

“조숙했던 거야. 올 됐다고 하나?” “못되고 까진 거지.”

“저 친군 노래자랑도 나갔잖냐. 딴따라 될 줄 알았는데.”

“내 우상은 따로 있었어. 밤에 학교운동장에서 흙먼지 털고 나오는 이 놈.”

“야, 넌 쓸데없는 기억력이 비상하냐. 공부나 하지.”

“말도 마. 김영배 선생인가. 무조건 영어단원을 통째로 외라는 거야. 유니언 교과서 들고 진땀 뻘뻘 흘리고 서 있는데, 대신 지명 받은 누군가가 유창하게 해냈어.”

“주 oo 선생 기억나? 아들이 동기였고. 상업(실업)수업 지겨웠잖아.”

“대 회초리, 내 손바닥에만 춤을 췄다. 그때 좀 해 둘 건데.”.....

“촌놈들 많이 아네.”

“몰라. 함께 추억을 짜깁기 해내는 거지. 그래도 이것밖에 없잖아”

“자, 한 잔 때리자! 일년에 한 번씩이면 우리 몇 번 더 볼 수 있을까?”

“백번은 만나야지. 날숨들숨 잘하고.... 건배!”

“그럴까. 황혼열차는 시속 육십키로 달려오는데.”.......

“연착시키지 뭐. 수신호로. 조금만.” “앞차 뒤차는 어떻게 하고?”

“할 수 없지 뭐, 뒤차라도.”

“누구한테 부탁하지? 하!하!하!


안녕하세요? 지난 8월 중순 폭염 속에 진주 김천두 군(진주축구협회부회장) 주선으로 지리산 세석산장의 초입 개울가에서 부천 안홍식 군, 문경 김광우 군, 서울 장창호 군, 그리고 저가  모여앉아 시공을 뛰어넘어 아득한 추억의 터널 속에서 헤매는 대화의 일부입니다.

서울의 서성환 군과 진석우 군은 바쁜 일정 때문에 합류하지 못했지만 출연한 배우들의(?) 실력은 전성기 못지않은 캐릭터를 살리면서 그 기백과 열정이 밤새도록 대단했습니다.

가정 사에 매달리고 세상사에 짓눌리며 자신을 돌아볼 틈도 없이 지나온 세월 속에 숨겨진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을 반추하며 엮어 내려니 시간이 모자라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슬픈 건 잊혀져 가는 자신의 존재라고 했는데 자신의 소중한 것들마저 스스로 체념하고 사는 건 더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요.

그 단절된 추억을 안고 사는 위인이 바로 저라고 생각되네요.

서두에 저는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라고 썼습니다.

오래전에 심금을 울린 ‘이산가족 찾기 방송’의 타이틀이 떠오를 것입니다.

제게는 화려하고 자랑스러운 학창시절의 파노라마는 아니지만 훌륭한 동문여러분들 속에 묻혀 있을 추억의 편린들, 부끄럽고 후회스러우며 유쾌하지 않을지라도 내 인생소설의 발단부인 만큼 채록해서 간직하고 싶습니다.


저는 요즈음 울적하거나 생각할 일이 생기면 근교 산에 오릅니다.

이곳 울산은 고헌산, 영축산, 가지산, 신불산, 천왕산, 제약산, 등 명산들이 많습니다.

불러 영남 알프스라고 합니다. 가파른 능선따라 헐떡거리는 숨결 속에서 자신을 시험하고, 자신을 되돌아보고, 자신을 확인하는 순간들이 산행의 즐거움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다 정상에 오른 성취감 뒤엔 자연이 일깨워주는 또 다른 무엇이 밀려옵니다.

성급한 낙엽이 바람에 내몰리며 찢기는 처연한 모습을 보노라면 나 또한 이 순간, 이 자리, 이 공기, 이 땅을 비켜주어야 한다는 자연의 섭리를 깨닫게 되지요.

하지만 순간에 엄습하는 허무함이 나약한 등산객을 서글프게 합니다.

돌아보면 아무것도 이루고 남긴 것도 없이 세월을 참 헤프게 써버린 것 같아서 하산 길 입안에 녹지 않은 사탕처럼 우물거려봅니다.


“이 화상아, 컵에 물은 아직 남아 있잖아.

지금부턴 실수하지 마!

수평선 넘어 사라지는 배 같은 인생, 주눅 들지 마!

떠나온 항구를 돌아봐.

니가 일군 터전에서 니 자식, 니 손자, 잘 살고 있잖아.

아름답지?!”


사회 각 분야에서 자랑스러운 동기여러분! 가정에 건강과 행운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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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서성환님의 댓글

서성환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과연 시나리오 작가답다. 왕년에 축구할 때는
  이리 잘 쓰는 줄 몰랐는데,, 늦게나마 1438회
  등단을 축하한다.

안홍식님의 댓글

안홍식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즐거웠던 옛시절을 그려보는 그림이 참 좋았다.
언제나 추억은 아름다운가보다.
세석산장 물소리 좋았고 진주의 노래방노래가좋았제.
우리 또 추억만드는것 궁리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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