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손가락과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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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상철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05-06-21 07:25 조회12,52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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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비용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언제나 어디서나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은 산책
인것 같아 동네를 걷고 있는데 초보자가 연주하는 것같은 피아노 소리를 들었읍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공립 초등학교에는 정규과목에 음악.미술 시간이 없으므로 일부 학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과외활동을 시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주님을 두신 가정은 딸들이 어릴때 피아노를 가르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기억됩니다.
바이엘에서 시작하여 끝나면 동요, 소곡집을 체르니와 병행하여 연습을 하죠.
피아노, 첼로, 바이얼린 연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효과가 당장 나는것이 아니므로
인내심을 가지고 피나는 연습을 해야 하는것으로 알고 있읍니다.
어린 자녀들이 연습을 시작한지 2 – 3년 지나면 자주 연습을 하게 되어서 우리들
귀에 익숙한 곡들을 듣게 됩니다.
경쾌한 멜로디의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바다르체브스키의 ‘소녀의 기도’
피아노 독주곡으로 유명한 드보르작의 ‘유모레스크’
저는 공주님이 없고 두 사내들만 키웠는데 악기 하나 정도는 취미로 할줄 알아야 성인이 되어 어는 직종에 일하더라도 사회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애들에게 어릴적에
피아노 교습을 강요했읍니다.
두 아들은 손가락이 삐거나 부러지면 6주 이상 기부스를 하고 피아노 연습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대신 농구, 야구등 운동을 그당시 열심히 하데요.
결국은 3 – 4년 배우다가 독일계 미국인 피아노 선생님이 애들이 흥미도 없고 지쳐
있는것 같다고 하여 도중하차 시켰읍니다.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희아’
지난 주 MBC에서 방영한 프로그램을 이곳에서 시청했는데 중간 중간 너무 슬퍼서 눈믈을 흘리며 울었읍니다.
사람마다 각자 다른 업을 가지고 태어나고, 외나무다리를 건너듯이 어떤 사람들은
힘든 세상살이를 하고 있다고 느꼈읍니다.
태어날때 한 손에 2개의 손가락 그리고 다리도 조금 자라다 멈추어서 키가 103Cm
장애인인 20살 처녀가 7살때부터 양쪽 4개의 손가락으로 연습하여 피아니스트가
되는 과정을 소개하는 인간 승리의 드라마였읍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는 2 – 3개월 전에 방영 되었으리라 믿읍니다.
육체적으로 불리한 조건인 신체장애를 가진 희아를 옆에서 키우고 돌보아주고 격려하는 엄마는 외형적으로는 독하고 강인하게 행동했으나 한편 마음속으로는
얼마나 연민의 피눈물을 흘렸을까요.
캐나다의 공연때 연주한 곡으로 저도 너무나 좋아하는 감미로운 선율과 화려한 기교가 혼합된 ‘쇼팽의 즉흥환상곡 ( Fantaisie by Chopin )을 들을때 희아가 너무
자랑스러웠읍니다.
최악의 핸디캡을 가졌으나 노력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사회에 잘 적응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고, 장애인을 바라보며 나는 건강한 육체를 가졌으니 정말로 행복한
사람이다 라고 생각했읍니다.
희아가 캐나다의 나이아가라폭포 근처의 도시에서 연주하는 장면을 보고 오래전
있었던 출장이 기억났읍니다.
장치산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기계에 컴퓨터 씨스템을 부착하는 Engineering
Consulting 일때문에 3명의 구매자가 미국으로 와서 같이 캐나다에 소재한 본사와
그 지사들을 방문하는 일정이 계획되어 있었읍니다.
세상일 살다보면 생각하지도 예기치도 않았던 복병들이 도사리고 있지 않읍니까.
출발 약 5일전쯤 갑작스러운 허리의 통증때문에 CT Scan을 하니 척추 4번과 5번,
5번과 마지막 뼈 사이에 디스크 ( 물렁뼈 )가 돌출하여 주위 신경과 부딪혀 통증이
발생한다는 의사의 설명을 듣고 신경외과 전문의와 재활치료 전문의를 찾았고,
중요하고 예정된 회사일인지라 소염진통제를 소지하고 출장을 떠났읍니다.
캐나다의 프랑스라는퀘백시로 가니까 90% 이상이 프랑스 후손인지라 불어와 영어로 표시된 도로표시판이 이색적이었고, 회의 끝난후 유명한 노트르담 성당을 구경한후 양고기 스테이크로 저녁을 먹고 우리나라 극장식 술집 같은 까페에서
프랑스에서 온 무희들이 공연하는 Topless Show를 숨을 죽이고 눈을 뻔쩍이며
구경했읍니다.
다음 행선지는 캐나다 경제의 중심지인 토론토였으며 공식적인 업무를 마친후 3명의 구매자와 의기투합하여 자동차를 렌트하여 세계 4대 폭포중의 하나인 나이아가라폭포를 구경하기위해 진통제를 먹지 않고 허리의 통증을 참으며 차를
운전했읍니다.
가까이서 보는 폭포도 장관이었지만 비옷을 입고 유람선을 타고 폭포 밑에까지
가니까 그 장엄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신비 그 자체였읍니다.
곡식 매매 중심지인 위니펙, 많은 동양인들이 이민 오는 아름다운 해안도시 밴쿠버에서 모든 일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온 적이 있으며 움직일때마다 변해가는
주변풍경, 별 관심을 주지 않고 지나치는 행인들, 스치는 바람들이 출장이나 여행을
마친후 가지게 되는 감정인것 같읍니다.
나이아가라폭포를 배경으로 한 희아의 모
인것 같아 동네를 걷고 있는데 초보자가 연주하는 것같은 피아노 소리를 들었읍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공립 초등학교에는 정규과목에 음악.미술 시간이 없으므로 일부 학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과외활동을 시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주님을 두신 가정은 딸들이 어릴때 피아노를 가르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기억됩니다.
바이엘에서 시작하여 끝나면 동요, 소곡집을 체르니와 병행하여 연습을 하죠.
피아노, 첼로, 바이얼린 연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효과가 당장 나는것이 아니므로
인내심을 가지고 피나는 연습을 해야 하는것으로 알고 있읍니다.
어린 자녀들이 연습을 시작한지 2 – 3년 지나면 자주 연습을 하게 되어서 우리들
귀에 익숙한 곡들을 듣게 됩니다.
경쾌한 멜로디의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바다르체브스키의 ‘소녀의 기도’
피아노 독주곡으로 유명한 드보르작의 ‘유모레스크’
저는 공주님이 없고 두 사내들만 키웠는데 악기 하나 정도는 취미로 할줄 알아야 성인이 되어 어는 직종에 일하더라도 사회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애들에게 어릴적에
피아노 교습을 강요했읍니다.
두 아들은 손가락이 삐거나 부러지면 6주 이상 기부스를 하고 피아노 연습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대신 농구, 야구등 운동을 그당시 열심히 하데요.
결국은 3 – 4년 배우다가 독일계 미국인 피아노 선생님이 애들이 흥미도 없고 지쳐
있는것 같다고 하여 도중하차 시켰읍니다.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희아’
지난 주 MBC에서 방영한 프로그램을 이곳에서 시청했는데 중간 중간 너무 슬퍼서 눈믈을 흘리며 울었읍니다.
사람마다 각자 다른 업을 가지고 태어나고, 외나무다리를 건너듯이 어떤 사람들은
힘든 세상살이를 하고 있다고 느꼈읍니다.
태어날때 한 손에 2개의 손가락 그리고 다리도 조금 자라다 멈추어서 키가 103Cm
장애인인 20살 처녀가 7살때부터 양쪽 4개의 손가락으로 연습하여 피아니스트가
되는 과정을 소개하는 인간 승리의 드라마였읍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는 2 – 3개월 전에 방영 되었으리라 믿읍니다.
육체적으로 불리한 조건인 신체장애를 가진 희아를 옆에서 키우고 돌보아주고 격려하는 엄마는 외형적으로는 독하고 강인하게 행동했으나 한편 마음속으로는
얼마나 연민의 피눈물을 흘렸을까요.
캐나다의 공연때 연주한 곡으로 저도 너무나 좋아하는 감미로운 선율과 화려한 기교가 혼합된 ‘쇼팽의 즉흥환상곡 ( Fantaisie by Chopin )을 들을때 희아가 너무
자랑스러웠읍니다.
최악의 핸디캡을 가졌으나 노력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사회에 잘 적응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고, 장애인을 바라보며 나는 건강한 육체를 가졌으니 정말로 행복한
사람이다 라고 생각했읍니다.
희아가 캐나다의 나이아가라폭포 근처의 도시에서 연주하는 장면을 보고 오래전
있었던 출장이 기억났읍니다.
장치산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기계에 컴퓨터 씨스템을 부착하는 Engineering
Consulting 일때문에 3명의 구매자가 미국으로 와서 같이 캐나다에 소재한 본사와
그 지사들을 방문하는 일정이 계획되어 있었읍니다.
세상일 살다보면 생각하지도 예기치도 않았던 복병들이 도사리고 있지 않읍니까.
출발 약 5일전쯤 갑작스러운 허리의 통증때문에 CT Scan을 하니 척추 4번과 5번,
5번과 마지막 뼈 사이에 디스크 ( 물렁뼈 )가 돌출하여 주위 신경과 부딪혀 통증이
발생한다는 의사의 설명을 듣고 신경외과 전문의와 재활치료 전문의를 찾았고,
중요하고 예정된 회사일인지라 소염진통제를 소지하고 출장을 떠났읍니다.
캐나다의 프랑스라는퀘백시로 가니까 90% 이상이 프랑스 후손인지라 불어와 영어로 표시된 도로표시판이 이색적이었고, 회의 끝난후 유명한 노트르담 성당을 구경한후 양고기 스테이크로 저녁을 먹고 우리나라 극장식 술집 같은 까페에서
프랑스에서 온 무희들이 공연하는 Topless Show를 숨을 죽이고 눈을 뻔쩍이며
구경했읍니다.
다음 행선지는 캐나다 경제의 중심지인 토론토였으며 공식적인 업무를 마친후 3명의 구매자와 의기투합하여 자동차를 렌트하여 세계 4대 폭포중의 하나인 나이아가라폭포를 구경하기위해 진통제를 먹지 않고 허리의 통증을 참으며 차를
운전했읍니다.
가까이서 보는 폭포도 장관이었지만 비옷을 입고 유람선을 타고 폭포 밑에까지
가니까 그 장엄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신비 그 자체였읍니다.
곡식 매매 중심지인 위니펙, 많은 동양인들이 이민 오는 아름다운 해안도시 밴쿠버에서 모든 일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온 적이 있으며 움직일때마다 변해가는
주변풍경, 별 관심을 주지 않고 지나치는 행인들, 스치는 바람들이 출장이나 여행을
마친후 가지게 되는 감정인것 같읍니다.
나이아가라폭포를 배경으로 한 희아의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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