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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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해일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04-10-19 20:44 조회11,12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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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 교수의 글(문학의 힘)
신은 인간의 계획을 싫어하시는 모양이다. 올가을 나는 계획이 참 많았다.
이제껏 연재했던 ‘문학의 숲’을 책으로 묶어 내는 일, 여름에 쓰던 논문을 마무리하는 일, 번역 한 권을 새로 시작하는 일, 그리고 올해만은 꼭 어머니와 함께 가을 여행을 떠나는 일 등…. 이 계획들이 다 성사된다면 난 참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장영희의 삶은 그런대로 잘나가고 있다고 자부했다.
3년 전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안식년이라 나는 하버드대 방문교수 자격으로 보스턴에 있었다.
그냥 무심히 보험료 밑천 뺀다고 건강 검진하다가 대번에 유방암 판정을 받고 그곳에서 수술 두 번 받고 귀국, 방사선 치료 받고 깨끗이 완치되었다.
학교에도, 가까운 친지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말끔히 마무리한 셈이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흠, 역시 장영희군. 남들이 무서워서 벌벌 떠는 암을 이렇게 초전박살내다니….”
그러다가 된통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지난 여름부터 느꼈던 허리와 목의 그 지독한 통증이 결국은 유방암이 목 뒤 경추 3번으로 전이된 때문이고, 척추암이라고 했다.
“빨리 입원하라”는 전화를 받았을 때, 이상하게 나는 놀라지 않았다. 꿈에도 예기치 않았던 일인데도 마치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듯, 그냥 풀썩 주저앉았을 뿐이다.
뒤돌아보면 내 인생에 이렇게 넘어지기를 수십 번, 남보다 조금 더 무거운 짐을 지고 가기에 좀더 자주 넘어졌고, 그래서 어쩌면 넘어지기 전에 이미 넘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나는 믿는다. 넘어질 때마다 번번이 죽을 힘 다해 다시 일어났고, 넘어지는 순간에도 나는 다시 일어설 힘을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이 넘어져 봤기에 내가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입원한 지 3주째, 병실에서 보는 가을 햇살은 더욱 맑고 화사하다.
‘생명’을 생각하면 끝없이 마음이 선해지는 것을 느낀다. 행복, 성공, 사랑―삶에서 최고의 가치를 갖고 있는 이 단어들도 모두 생명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한낱 군더더기에 불과하다.
‘살아 있음’의 축복을 생각하면 한없이 착해지면서 이 세상 모든 사람, 모든 것을 포용하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 가슴 벅차다. 그러고 보니 내 병은 더욱더 선한 사람으로 태어나라는 경고인지도 모른다.
입원하고 나흘 만에 통증이 조금 완화되고 나서야 나는 처음으로 다리 보조기를 신고 일어섰다. 그리고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았다.
문득 내 발바닥이 땅을 딛고 서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강한 희열이 느껴졌다. 직립인간으로서 직립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소중한지, 누워서 보는 하늘이 아니라 서서 보는 하늘은 얼마나 더 화려한지….
새삼 생각해 보니, 목을 나긋나긋하게 돌리며 내가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있는 일, 온몸의 뼈가 울리는 지독한 통증 없이 재채기 한 번을 시원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모르고 살아왔다.
이제 꼭 3년 만에 일단 이 칼럼을 접으려고 한다. 언젠가 이 칼럼에 ‘또 다른 시작’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거의 완성된 논문을 잃어버리고 다시 써야 했던 일, 완성된 논문을 도둑에게 헌정한 일화를 얘기하면서 나는 포크너의 말을 인용했다.
“문학은 인간이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는가를 가르친다.” 그렇다. 문학은 삶의 용기를, 사랑을, 인간다운 삶을 가르친다.
문학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치열한 삶을, 그들의 투쟁을, 그리고 그들의 승리를 나는 배우고 가르쳤다. 문학의 힘이 단지 허상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도 나는 다시 일어날 것이다.
떠나기 전, 감사해야 할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우선 소중한 지면을 내게 할애해 준 조선일보에 감사한다. 위대한 작품을 남겨준 작가들이 너무 고맙고, 변변치 못한 선생을 두어 걸핏하면 내 글의 소재가 되는 나의 학생들에게도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글을 읽어준 독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독자 여러분, 당분간은 ‘영미시산책’에서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신은 인간의 계획을 싫어하시는 모양이다. 올가을 나는 계획이 참 많았다.
이제껏 연재했던 ‘문학의 숲’을 책으로 묶어 내는 일, 여름에 쓰던 논문을 마무리하는 일, 번역 한 권을 새로 시작하는 일, 그리고 올해만은 꼭 어머니와 함께 가을 여행을 떠나는 일 등…. 이 계획들이 다 성사된다면 난 참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장영희의 삶은 그런대로 잘나가고 있다고 자부했다.
3년 전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안식년이라 나는 하버드대 방문교수 자격으로 보스턴에 있었다.
그냥 무심히 보험료 밑천 뺀다고 건강 검진하다가 대번에 유방암 판정을 받고 그곳에서 수술 두 번 받고 귀국, 방사선 치료 받고 깨끗이 완치되었다.
학교에도, 가까운 친지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말끔히 마무리한 셈이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흠, 역시 장영희군. 남들이 무서워서 벌벌 떠는 암을 이렇게 초전박살내다니….”
그러다가 된통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지난 여름부터 느꼈던 허리와 목의 그 지독한 통증이 결국은 유방암이 목 뒤 경추 3번으로 전이된 때문이고, 척추암이라고 했다.
“빨리 입원하라”는 전화를 받았을 때, 이상하게 나는 놀라지 않았다. 꿈에도 예기치 않았던 일인데도 마치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듯, 그냥 풀썩 주저앉았을 뿐이다.
뒤돌아보면 내 인생에 이렇게 넘어지기를 수십 번, 남보다 조금 더 무거운 짐을 지고 가기에 좀더 자주 넘어졌고, 그래서 어쩌면 넘어지기 전에 이미 넘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나는 믿는다. 넘어질 때마다 번번이 죽을 힘 다해 다시 일어났고, 넘어지는 순간에도 나는 다시 일어설 힘을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이 넘어져 봤기에 내가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입원한 지 3주째, 병실에서 보는 가을 햇살은 더욱 맑고 화사하다.
‘생명’을 생각하면 끝없이 마음이 선해지는 것을 느낀다. 행복, 성공, 사랑―삶에서 최고의 가치를 갖고 있는 이 단어들도 모두 생명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한낱 군더더기에 불과하다.
‘살아 있음’의 축복을 생각하면 한없이 착해지면서 이 세상 모든 사람, 모든 것을 포용하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 가슴 벅차다. 그러고 보니 내 병은 더욱더 선한 사람으로 태어나라는 경고인지도 모른다.
입원하고 나흘 만에 통증이 조금 완화되고 나서야 나는 처음으로 다리 보조기를 신고 일어섰다. 그리고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았다.
문득 내 발바닥이 땅을 딛고 서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강한 희열이 느껴졌다. 직립인간으로서 직립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소중한지, 누워서 보는 하늘이 아니라 서서 보는 하늘은 얼마나 더 화려한지….
새삼 생각해 보니, 목을 나긋나긋하게 돌리며 내가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있는 일, 온몸의 뼈가 울리는 지독한 통증 없이 재채기 한 번을 시원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모르고 살아왔다.
이제 꼭 3년 만에 일단 이 칼럼을 접으려고 한다. 언젠가 이 칼럼에 ‘또 다른 시작’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거의 완성된 논문을 잃어버리고 다시 써야 했던 일, 완성된 논문을 도둑에게 헌정한 일화를 얘기하면서 나는 포크너의 말을 인용했다.
“문학은 인간이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는가를 가르친다.” 그렇다. 문학은 삶의 용기를, 사랑을, 인간다운 삶을 가르친다.
문학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치열한 삶을, 그들의 투쟁을, 그리고 그들의 승리를 나는 배우고 가르쳤다. 문학의 힘이 단지 허상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도 나는 다시 일어날 것이다.
떠나기 전, 감사해야 할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우선 소중한 지면을 내게 할애해 준 조선일보에 감사한다. 위대한 작품을 남겨준 작가들이 너무 고맙고, 변변치 못한 선생을 두어 걸핏하면 내 글의 소재가 되는 나의 학생들에게도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글을 읽어준 독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독자 여러분, 당분간은 ‘영미시산책’에서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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