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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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상철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04-08-14 07:40 조회13,07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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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한 맺힌 혹은 섭섭한 사연들은 흘러가는 강물에 새겨서 빨리 깨끗이 잊어버리도록하고 은혜나 도움 받은 일은 단단한 돌에 새겨 평생토록 잊지말고 기억하여 두고두고갚도록 하여야 한다는 옛말 기억하시리라 봅니다.
시드니, 나폴리, 리오데 자네이로를 셰계 3대 미항이라고 하는데 이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아름다운 경관을 가진 항구도시 San Francisco. 우리에게 아주익숙한 Pop song들 기억나시죠.
Yesterday, Changing partners, Let it be me, House of the rising sun등과
같이 유행했던 노래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머리에 꽃을’ 원명은 Scott Mckenzie가 불렀던 San Francisco. S.F에서 남쪽으로 1시간 정도 내륙으로 자동차로 가면 세계의 반도체 업체들이 운집한 곳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Silicon Valley가있읍니다.
이곳은 Santa Clara라는 도시와 San Jose ( Spanish 어원이므로 ‘샌호세’라고 발음해야합니다) 라는 도시를 합친 지역입니다.
81년 반년, 82년 산업공학 대학원 공부때문에 이곳에 거주했으므로 잘아는 장소이며 방학동안은 전자공장에서 반품된 컴푸터 회로의 수리를위해 땜질을 하였고(손재주가 없어 마음 고생 심했음)
집사람도 생활비 일부를 벌기위해 샌드위치가게에서 파트타임을 했던 힘들었지만 젊은 시절의 희망이 있었던 진주 다음으로제2의 고향같은 곳이었읍니다.
그당시 LG의 기획조정실에 근무하던 대학 1년 후배와 서신을 주고 받았는데 자기동기 한분이 이곳에 이민와 산다고 하며 전화번호를 주었는데 저도 잘 아는 후배이고그 분은 저희 학과에서 단 한명뿐인 여자이었으므로 기억했읍니다.
그 후배 집에 전화를 하여 안부를 묻고, 그 후 서로 생활이 바빠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 어느날 저의아파트로 찾아왔는데 쌀.갈비.반찬거리.애들과자등 승용차에 가득 싣고와서 힘들게외국에서 공부하는 선배를 위로하러 왔다고하며 모든 과정 잘 끝내고 모교에 교수로
가서 후배들 잘 이끌어 달라는 덕담까지 해주었읍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미국에서의 초기 이민생활은 모두 시간에 쫓기고 경제적 여유가 없는데 이렇게 관심을 보여준후배의 행동은 정말 고마움이상 이었읍니다.
이러한 도움이 하나 하나 쌓여서 이곳 생활에 잘 적응하게 되었는데 석사과정 끝내고 다른 학교로 옮기면서 연락을 못해 고마움을 지금까지 갚지 못하고 있읍니다.
인간으로 반드시 행하여야 되는 일인데도 사람이 살아 가면서 그렇게 하지 못하고 모순된 삶을 살고 있는 그리고 무심하게 지내온 자신이 부끄럽네요.
빨리 만나 미안함과 고마움을 함께 전해여야 될것 같읍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시드니, 나폴리, 리오데 자네이로를 셰계 3대 미항이라고 하는데 이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아름다운 경관을 가진 항구도시 San Francisco. 우리에게 아주익숙한 Pop song들 기억나시죠.
Yesterday, Changing partners, Let it be me, House of the rising sun등과
같이 유행했던 노래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머리에 꽃을’ 원명은 Scott Mckenzie가 불렀던 San Francisco. S.F에서 남쪽으로 1시간 정도 내륙으로 자동차로 가면 세계의 반도체 업체들이 운집한 곳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Silicon Valley가있읍니다.
이곳은 Santa Clara라는 도시와 San Jose ( Spanish 어원이므로 ‘샌호세’라고 발음해야합니다) 라는 도시를 합친 지역입니다.
81년 반년, 82년 산업공학 대학원 공부때문에 이곳에 거주했으므로 잘아는 장소이며 방학동안은 전자공장에서 반품된 컴푸터 회로의 수리를위해 땜질을 하였고(손재주가 없어 마음 고생 심했음)
집사람도 생활비 일부를 벌기위해 샌드위치가게에서 파트타임을 했던 힘들었지만 젊은 시절의 희망이 있었던 진주 다음으로제2의 고향같은 곳이었읍니다.
그당시 LG의 기획조정실에 근무하던 대학 1년 후배와 서신을 주고 받았는데 자기동기 한분이 이곳에 이민와 산다고 하며 전화번호를 주었는데 저도 잘 아는 후배이고그 분은 저희 학과에서 단 한명뿐인 여자이었으므로 기억했읍니다.
그 후배 집에 전화를 하여 안부를 묻고, 그 후 서로 생활이 바빠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 어느날 저의아파트로 찾아왔는데 쌀.갈비.반찬거리.애들과자등 승용차에 가득 싣고와서 힘들게외국에서 공부하는 선배를 위로하러 왔다고하며 모든 과정 잘 끝내고 모교에 교수로
가서 후배들 잘 이끌어 달라는 덕담까지 해주었읍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미국에서의 초기 이민생활은 모두 시간에 쫓기고 경제적 여유가 없는데 이렇게 관심을 보여준후배의 행동은 정말 고마움이상 이었읍니다.
이러한 도움이 하나 하나 쌓여서 이곳 생활에 잘 적응하게 되었는데 석사과정 끝내고 다른 학교로 옮기면서 연락을 못해 고마움을 지금까지 갚지 못하고 있읍니다.
인간으로 반드시 행하여야 되는 일인데도 사람이 살아 가면서 그렇게 하지 못하고 모순된 삶을 살고 있는 그리고 무심하게 지내온 자신이 부끄럽네요.
빨리 만나 미안함과 고마움을 함께 전해여야 될것 같읍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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