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8 테니스 회원 9월 모임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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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종룡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04-08-30 22:11 조회11,97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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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8 테니스 회원 9월 모임 안내
태풍이 더위를 몰고 갔는지 처서가 지났음인지 아침 저녁으로 스산함을 느낍니다.. 안녕들하신지요 ? 피서를 어떻게했는지 소식도 알고 얼굴 한번 보여주구려!
바야흐로 운동하기에 좋은 계절이 왔습니다. 아래와 같이 1438 테니스회원 9월 모임을 실시하니 동부인 참석 바랍니다.
▲ 모임 일시 : 2004. 9. 12일 10:00시
▲ 장 소 : 서울시 중량구 신내동 (태능근처) 57사단 테니스장
▲ 찾아 오시는 길 : 올림픽대로 →강동대교→구리톨게이트(800원)→구리 IC (태능 방향 으 로 나옴. 퇴계원으로 가지 말 것)→ 북부간선도로(태능 방향이 북부간선도로 임. 구리 IC에서 5 분 거리 →57사단 표지 있음)
▲ 참석대상 : 테니스 회원 및 1438 운동희망자 끝.
- 펌 글 -
● 가을엔 이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갈색 빛 물든 쓸쓸한 빛깔이어도 좋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철들어 깊은 가을을 함께 바라볼 수 있는
가슴속에 풍경화 하나 그리고 싶다
차 한 잔에 가을을 타서 마실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맑은 아픔이 흐르는 시냇물의 이야기여도 좋고
추억의 그림자 밟으며 낙엽을 주어도 좋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떨어지는 낙엽 위에 그리움의 낙서를 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그리하여 맑게 내 영혼의 그림자 씻어
그 쓸쓸한 뒷모습을 씻어 투명한 가을하늘에
밝은 코스모스 한 자락 피우고 싶다.
● 6.25 사변 10대 불가사이
"군번 1번의 외길 인생 이형근 회고록"(중앙일보사) 군 수뇌부에 숨어있는 간첩을 의심하는 10대 불가사이가 기록돼 있다. 전사를 읽는 분들은 6.25 직전 군 수뇌에 간첩들이 들어차 있었다고 말한다. 만일 국방부에 주사파 코드들이 대거 영입되면 이는 6.25 때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위험한 것이다. 아래에 이형근 대장의 회고록 일부를 소개한다.
"나는 여기서 6.25전쟁 전후에 나타난 10대 불가사이를 지적함으로써 향후 국가방위를 위한 교훈으로 삼고 싶다. 그것은 군사적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다. 나는 6.25 초전의 전후 사정을 종합 판단할 때 군 내외에서 좌익분자들이 긴밀하게 합작, 국군의 작전을 오도했다고 확신한다. 그러면 통적(通敵) 분자가 과연 누구냐? 나로서는 수상하다고 느껴온 사람이 있지만 심증만 갖고 꼭 집어 거명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들 가운데는 죽은 사람도 있지만 아직도 살아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누군가가 확증을 제시할 것으로 믿으며 바로 이런 증언이야말로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서도 긴요한 일이라 믿는다. 풀려야 할 가칭 10대 미스터리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일선 부대의 적정보고를 군 수뇌부에서 묵살 내지 무시했다는 점이다.
둘째, 6.25가 발발하기 불과 2주일 전, 중앙 요직을 포함한 전후방 사단장과 연대장급의 대대적인 교류와 이동이 단행되었다. 모두가 지형과 병사에 익숙치 못한 상태에서 전쟁을 맞았다
셋째, 전후방 부대의 대대적인 교대다. 6.13-6.20일에 걸친 전후방부대 이동 역시 가장 부적절한 조치였다.
넷째, 6.11부터 발령됐던 비상경계령이 6.24일 0시에 해제됐다.
다섯째, 이런 위기 상황에서 육본은 비상경계 해제와 더불어 전 장병의 2분의1(50%)에게 휴가를 주어 외출과 외박을 시켰다.
여섯째, 육군 장교클럽 댄스 파티다. 장교들은 6.25일 새벽까지 술과 댄스를 즐겼다.
일곱째, 적의 남침 직후 우리 병력을 서울 북방에 축차 투입해 장병들의 희생을 강요했다.
여덟째, 적의 공세로 국군이 퇴각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6.25-27일 우리 방송 은 국군이 반격, 북진중이라고 허위 방송함으로써 군부는 물론 국민들까지 상황판단을 그르치게 했다.
아홉째, 한강다리의 조기 폭파다. 병력과 군수물자가 한강 이북에 있는데도 서둘러 폭파했다.
열번째, 공병감 최창식 대령의 조기 사형집행이다. 최 대령은 육군참모총장의 명령에 복종, 폭파했을 뿐인데 이에 책임을 지고 1950.9.21일 비밀리에 처형됐다.
술 취한 사람에게 취했느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답한다. 정신병자에게 그렇게 물어도 아니라고 부정한다. 붉은 정체를 가진 사람에게 정체를 묻는다 해서 “그래, 나는 붉다”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까?
지금 이들은 단순히 군사독재를 타도하고 민주화를 이룩하려 했던 사람들이 아니다. 김일성을 숭배하고 주체사상을 달달 외우고, 투쟁하는 방법을 배워가며, 경찰들을 피해 다니고, 간첩죄로 감옥살이를 하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왜 그토록 고난스러운 삶을 택했을까? 종교적 신앙 때문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감옥에 갈 지언정 군대를 가지 않듯이 이들은 김일성교의 순교자들이다. 이들은 민족의 정통성이 북한에 있다고 믿는다. "김일성은 친일파를 청산하고 깨끗한 피로 북한을 세웠지만 이승만은 친일파로 남한을 세웠다. 남한은 태어나서는 안될 더러
태풍이 더위를 몰고 갔는지 처서가 지났음인지 아침 저녁으로 스산함을 느낍니다.. 안녕들하신지요 ? 피서를 어떻게했는지 소식도 알고 얼굴 한번 보여주구려!
바야흐로 운동하기에 좋은 계절이 왔습니다. 아래와 같이 1438 테니스회원 9월 모임을 실시하니 동부인 참석 바랍니다.
▲ 모임 일시 : 2004. 9. 12일 10:00시
▲ 장 소 : 서울시 중량구 신내동 (태능근처) 57사단 테니스장
▲ 찾아 오시는 길 : 올림픽대로 →강동대교→구리톨게이트(800원)→구리 IC (태능 방향 으 로 나옴. 퇴계원으로 가지 말 것)→ 북부간선도로(태능 방향이 북부간선도로 임. 구리 IC에서 5 분 거리 →57사단 표지 있음)
▲ 참석대상 : 테니스 회원 및 1438 운동희망자 끝.
- 펌 글 -
● 가을엔 이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갈색 빛 물든 쓸쓸한 빛깔이어도 좋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철들어 깊은 가을을 함께 바라볼 수 있는
가슴속에 풍경화 하나 그리고 싶다
차 한 잔에 가을을 타서 마실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맑은 아픔이 흐르는 시냇물의 이야기여도 좋고
추억의 그림자 밟으며 낙엽을 주어도 좋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떨어지는 낙엽 위에 그리움의 낙서를 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그리하여 맑게 내 영혼의 그림자 씻어
그 쓸쓸한 뒷모습을 씻어 투명한 가을하늘에
밝은 코스모스 한 자락 피우고 싶다.
● 6.25 사변 10대 불가사이
"군번 1번의 외길 인생 이형근 회고록"(중앙일보사) 군 수뇌부에 숨어있는 간첩을 의심하는 10대 불가사이가 기록돼 있다. 전사를 읽는 분들은 6.25 직전 군 수뇌에 간첩들이 들어차 있었다고 말한다. 만일 국방부에 주사파 코드들이 대거 영입되면 이는 6.25 때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위험한 것이다. 아래에 이형근 대장의 회고록 일부를 소개한다.
"나는 여기서 6.25전쟁 전후에 나타난 10대 불가사이를 지적함으로써 향후 국가방위를 위한 교훈으로 삼고 싶다. 그것은 군사적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다. 나는 6.25 초전의 전후 사정을 종합 판단할 때 군 내외에서 좌익분자들이 긴밀하게 합작, 국군의 작전을 오도했다고 확신한다. 그러면 통적(通敵) 분자가 과연 누구냐? 나로서는 수상하다고 느껴온 사람이 있지만 심증만 갖고 꼭 집어 거명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들 가운데는 죽은 사람도 있지만 아직도 살아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누군가가 확증을 제시할 것으로 믿으며 바로 이런 증언이야말로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서도 긴요한 일이라 믿는다. 풀려야 할 가칭 10대 미스터리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일선 부대의 적정보고를 군 수뇌부에서 묵살 내지 무시했다는 점이다.
둘째, 6.25가 발발하기 불과 2주일 전, 중앙 요직을 포함한 전후방 사단장과 연대장급의 대대적인 교류와 이동이 단행되었다. 모두가 지형과 병사에 익숙치 못한 상태에서 전쟁을 맞았다
셋째, 전후방 부대의 대대적인 교대다. 6.13-6.20일에 걸친 전후방부대 이동 역시 가장 부적절한 조치였다.
넷째, 6.11부터 발령됐던 비상경계령이 6.24일 0시에 해제됐다.
다섯째, 이런 위기 상황에서 육본은 비상경계 해제와 더불어 전 장병의 2분의1(50%)에게 휴가를 주어 외출과 외박을 시켰다.
여섯째, 육군 장교클럽 댄스 파티다. 장교들은 6.25일 새벽까지 술과 댄스를 즐겼다.
일곱째, 적의 남침 직후 우리 병력을 서울 북방에 축차 투입해 장병들의 희생을 강요했다.
여덟째, 적의 공세로 국군이 퇴각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6.25-27일 우리 방송 은 국군이 반격, 북진중이라고 허위 방송함으로써 군부는 물론 국민들까지 상황판단을 그르치게 했다.
아홉째, 한강다리의 조기 폭파다. 병력과 군수물자가 한강 이북에 있는데도 서둘러 폭파했다.
열번째, 공병감 최창식 대령의 조기 사형집행이다. 최 대령은 육군참모총장의 명령에 복종, 폭파했을 뿐인데 이에 책임을 지고 1950.9.21일 비밀리에 처형됐다.
술 취한 사람에게 취했느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답한다. 정신병자에게 그렇게 물어도 아니라고 부정한다. 붉은 정체를 가진 사람에게 정체를 묻는다 해서 “그래, 나는 붉다”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까?
지금 이들은 단순히 군사독재를 타도하고 민주화를 이룩하려 했던 사람들이 아니다. 김일성을 숭배하고 주체사상을 달달 외우고, 투쟁하는 방법을 배워가며, 경찰들을 피해 다니고, 간첩죄로 감옥살이를 하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왜 그토록 고난스러운 삶을 택했을까? 종교적 신앙 때문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감옥에 갈 지언정 군대를 가지 않듯이 이들은 김일성교의 순교자들이다. 이들은 민족의 정통성이 북한에 있다고 믿는다. "김일성은 친일파를 청산하고 깨끗한 피로 북한을 세웠지만 이승만은 친일파로 남한을 세웠다. 남한은 태어나서는 안될 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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