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보다 뜨거웠던 논개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이현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4-07-09 18:51 조회7,608회 댓글1건관련링크
본문
불보다 뜨거웠던 논개의 충성심… 바위에 길이 남아 있어
- 조선일보 2014-07-09 -
오늘은 우리 역사에서 의로운 여성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논개를 만나러 경상남도 진주로 가볼 거예요. 진주에는 약 400년 전인 1593년 임진왜란 때
논개가 일본 장수를 끌어안고 강으로 떨어진 바위가 있거든요.
이 바위 이름은 '의암(義巖)', 즉 의로운 바위라는 뜻이에요. 바위의 본래 이름은 위암이었는데, 1629년 선비 정대륭이 논개의 충절을 기리며 바위벽에 '의암'이라는 글자를 새겼다고 해요.
의암은 진주성 촉석루 아래 절벽에 있어요. 그래서 의암을 보려면 촉석루를 지나 아래로 내려가야 합니다. 의암은 너비 3m 정도로 그리 크지 않은데, 이 바위가 움직여 촉석루 절벽 가까이 들러붙을 정도가 되면 나라에 재앙이 생긴다는 전설도 전해져요.
논개는 전라북도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라는 곳에서 태어났어요. 논개의 생가로 알려진 곳은 수몰되어 근처에 생가를 복원해 놓았지요. 이곳에는 생가 외에 동상과 기념관 등이 세워져 있어요. 논개는 장수 현감으로 있던 최경회의 집에서 일하다가 최경회의 부인이 죽자 두 번째 부인이 되었다고 해요.
1592년 임진왜란이 터지자 최경회는 전쟁터로 나가게 되었어요. 최경회는 왜군과 싸우며 큰 공을 세워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승진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제2차 진주성 싸움에서 진주성을 빼앗기자 남강에 떨어져 죽고 말아요.
왜군들은 진주성을 빼앗고 촉석루에서 축하 잔치를 벌였지요.
논개는 남편과 나라의 원수를 갚기 위해 관아의 기생이 되어 잔치에 참석했어요. 그리고 술에 취한 왜장을 끌어안은 채 남강으로 떨어졌습니다. 논개는 혹시라도 왜장을 껴안은 팔이 풀어질까 열 손가락에 모두 가락지를 끼었다고 해요. 진주교에는 논개의 정신을 기리는 쌍가락지 상징물이 설치되어 있어요.
1740년 조선 영조 임금 때에는 촉석루 아래에 논개를 기리는 사당을 짓고 의기사(義妓祠)'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곳에 논개의 모습을 담은 영정과 위패를 모셨지요. 의기사는 나라에서 여성을 위해 처음 지은 사당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습니다.
의기사에는 1960년 이당 김은호 화백이 그린 논개 초상이 오랫동안 걸려 있었으나,
고증이 잘못되었다는 이유로 지난 2008년 석천 윤여환 화백이 그린 초상으로 교체되었어요. 생가가 있는 전북 장수군의 기념관 그림도 이때 함께 바뀌었습니다.
조선시대 다산 정약용, 매천 황현을 비롯한 여러 문인도 논개의 충절에 대해 노래했어요. 현대에도 논개에 대한 시와 소설이 많이 지어졌는데, 이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시인 변영로의 '논개'랍니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로 시작되는 이 시는 여러분의 엄마 아빠가 어릴 때부터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었거든요.
밤이면 촉석루 주변에 불을 밝혀 진주성 주변이 매우 아름다워요. 진주성 안에는 임진왜란사 전문박물관인 국립진주박물관이 있지요. 특히 이 건물은 우리나라 최고의 건축가 중 한 사람인 고 김수근 선생의 작품으로도 유명하답니다.
[1분 상식] '촉석루'는 어떤 곳인가요?
촉석루는 경남 밀양의 영남루, 북한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으로 꼽힙니다. 1365년 고려 공민왕 때 세워졌는데, 전쟁 중에는 진주성을 지키는 지휘 본부로, 평소에는 과거를 치르는 시험장으로 쓰였어요.
고려시대에 지어진 만큼 여러 차례 다시 짓고, 보수하였지요. 촉석루는 원래 국보 제276호였지만, 6·25전쟁 때 불에 타는 바람에 국보 자격을 잃고 말았어요. 지금 건물은 1960년에 다시 지어진 것으로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답니다.
그런데 촉석루가 고증을 거쳐 완벽하게 복원된 만큼 다시 국보로 지정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어요. 숭례문이 불에 탔다가 복원되고 나서도 국보 지위를 잃지 않은 것처럼 말이에요.
- 조선일보 2014-07-09 -
오늘은 우리 역사에서 의로운 여성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논개를 만나러 경상남도 진주로 가볼 거예요. 진주에는 약 400년 전인 1593년 임진왜란 때
논개가 일본 장수를 끌어안고 강으로 떨어진 바위가 있거든요.
이 바위 이름은 '의암(義巖)', 즉 의로운 바위라는 뜻이에요. 바위의 본래 이름은 위암이었는데, 1629년 선비 정대륭이 논개의 충절을 기리며 바위벽에 '의암'이라는 글자를 새겼다고 해요.
의암은 진주성 촉석루 아래 절벽에 있어요. 그래서 의암을 보려면 촉석루를 지나 아래로 내려가야 합니다. 의암은 너비 3m 정도로 그리 크지 않은데, 이 바위가 움직여 촉석루 절벽 가까이 들러붙을 정도가 되면 나라에 재앙이 생긴다는 전설도 전해져요.
논개는 전라북도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라는 곳에서 태어났어요. 논개의 생가로 알려진 곳은 수몰되어 근처에 생가를 복원해 놓았지요. 이곳에는 생가 외에 동상과 기념관 등이 세워져 있어요. 논개는 장수 현감으로 있던 최경회의 집에서 일하다가 최경회의 부인이 죽자 두 번째 부인이 되었다고 해요.
1592년 임진왜란이 터지자 최경회는 전쟁터로 나가게 되었어요. 최경회는 왜군과 싸우며 큰 공을 세워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승진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제2차 진주성 싸움에서 진주성을 빼앗기자 남강에 떨어져 죽고 말아요.
왜군들은 진주성을 빼앗고 촉석루에서 축하 잔치를 벌였지요.
논개는 남편과 나라의 원수를 갚기 위해 관아의 기생이 되어 잔치에 참석했어요. 그리고 술에 취한 왜장을 끌어안은 채 남강으로 떨어졌습니다. 논개는 혹시라도 왜장을 껴안은 팔이 풀어질까 열 손가락에 모두 가락지를 끼었다고 해요. 진주교에는 논개의 정신을 기리는 쌍가락지 상징물이 설치되어 있어요.
1740년 조선 영조 임금 때에는 촉석루 아래에 논개를 기리는 사당을 짓고 의기사(義妓祠)'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곳에 논개의 모습을 담은 영정과 위패를 모셨지요. 의기사는 나라에서 여성을 위해 처음 지은 사당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습니다.
의기사에는 1960년 이당 김은호 화백이 그린 논개 초상이 오랫동안 걸려 있었으나,
고증이 잘못되었다는 이유로 지난 2008년 석천 윤여환 화백이 그린 초상으로 교체되었어요. 생가가 있는 전북 장수군의 기념관 그림도 이때 함께 바뀌었습니다.
조선시대 다산 정약용, 매천 황현을 비롯한 여러 문인도 논개의 충절에 대해 노래했어요. 현대에도 논개에 대한 시와 소설이 많이 지어졌는데, 이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시인 변영로의 '논개'랍니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로 시작되는 이 시는 여러분의 엄마 아빠가 어릴 때부터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었거든요.
밤이면 촉석루 주변에 불을 밝혀 진주성 주변이 매우 아름다워요. 진주성 안에는 임진왜란사 전문박물관인 국립진주박물관이 있지요. 특히 이 건물은 우리나라 최고의 건축가 중 한 사람인 고 김수근 선생의 작품으로도 유명하답니다.
[1분 상식] '촉석루'는 어떤 곳인가요?
촉석루는 경남 밀양의 영남루, 북한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으로 꼽힙니다. 1365년 고려 공민왕 때 세워졌는데, 전쟁 중에는 진주성을 지키는 지휘 본부로, 평소에는 과거를 치르는 시험장으로 쓰였어요.
고려시대에 지어진 만큼 여러 차례 다시 짓고, 보수하였지요. 촉석루는 원래 국보 제276호였지만, 6·25전쟁 때 불에 타는 바람에 국보 자격을 잃고 말았어요. 지금 건물은 1960년에 다시 지어진 것으로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답니다.
그런데 촉석루가 고증을 거쳐 완벽하게 복원된 만큼 다시 국보로 지정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어요. 숭례문이 불에 탔다가 복원되고 나서도 국보 지위를 잃지 않은 것처럼 말이에요.
△ 촉석루 야경
△ 논개초상화(원본) △논개초상화(수정본)
△ 의암바위(논개바위)
△ 촉석루와 남강댓글목록
이현판님의 댓글
이현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논개 / 변영로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남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었네!
아! 강남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남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