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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상식27(백두산정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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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자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3-05-13 06:56 조회9,60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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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정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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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백두산정계비 

 

강희제가 1712년 오랄총관(烏喇摠管) 목극등(穆克登)을 보낸 것은 이때의 측량 결과대로 조·청 국경을 획정하라는 뜻이었다. 조선은 우참찬 박권(朴權)과 함경도관찰사 이선부(李善溥)를 보냈다. 둘은 백두산을 90리쯤 오르다 목극등이 나이가 많고 길이 험하니 내려가라고 말하자 “저와 관찰사가 뒤처질 수 없다는 뜻으로 재삼 굳게 청하였으나 끝내 기꺼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숙종실록’38년 5월 15일)


그러고서 목극등 일행은 백두산 천지에 올랐다가 거기서 내려와 동남쪽으로 4㎞ 지점인 2,200m고지 분수령에 정계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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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백두산정계비의 위치


그 비에는 ‘대청(大淸)’이라는 두 글자를 머리에 크게 쓰고, 그 아래에 “오랄총관 목극등이 황제의 뜻을 받들어 변경을 답사해 이곳에 와서 살펴보니 서쪽은 압록이 되고 동쪽은 토문(土門)이 되므로 분수령 위에 돌에 새겨 기록한다.
강희오십오년오월오일(烏喇摠管穆克登 奉旨査邊 至此審視 西爲鴨綠 東爲土門 故於分水嶺上 勒石爲記 康熙五十一年五月五日).”라는 사실을 기록하였다.
이어 청국인 수행원으로 필첩식(筆貼式) 소이창(蘇爾昌), 통관(通官) 이가(二哥)를 적고 아래에 조선 관원 6인의 이름도 함께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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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백두산정계비 탑본과 복원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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