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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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현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2-04-04 12:05 조회6,779회 댓글6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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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 땅에는 꽃과 풀도 없으니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구나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저절로 옷의 띠가 느슨해지니 自然衣帶緩(자연의대완)
이는 허리 때문이 아니라네 非是爲腰身(비시위요신)
이 시는 중국 전한의 궁정화가(宮廷畵家) 모연수에게 뇌물을 주지 않아 초상화를 일부러 잘못 그림으로써 흉노족의 선우(單于)에게 시집을 가야했던 왕소군(王昭君)의 심정을 당나라의 시인 동방규(東方叫)가 대변하여 시로 지었다. 봄이 와도 진정 봄을 느낄 수 없는 왕소군의 서글픈 심정을 묘사한 이 시에서 ‘춘래불사춘’이 유래하였다.
중국의 오랜 역사 속에 전설적인 네 명의 미인이 있었는데, 잠시 소개해 보기로 한다.
첫 번째는 춘추시대 말, 월나라의 여인 ‘서시(西施)’이다. 눈살을 찌푸린다는 의미의 사자성어 서시효빈(西施效嚬), 서시빈목(西施嚬目)은 서시가 살았던 마을에서 그녀의 아름다움이 하도 뛰어나, 같은 동네의 여인들은 무엇이든 서시의 흉내를 내면 아름답게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는 지병으로 앓던 심장병의 통증으로 이따금씩 찡그리는 서시의 얼굴까지도 흉내를 냈다고 한다. 또한 서시가 가슴앓이를 한다는 의미의 서시봉심(西施奉心)이라는 말도 이러한 정황에서 유래되었다. 모두 본질을 망각하고 맹목적으로 남을 따라한다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오(吳)나라에 패망한 월나라의 명재상인 범려는 우리에게 그 유명한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고사(故事)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는 월나라를 패망시킨 오나라에 대한 복수책으로 월나라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인이라 손꼽히던 서시를 호색가인 오나라의 왕 부차에게 데려다준다. 범려의 영략(英略)대로 서시의 아름다움에 깊이 빠져 부차는 제대로 정사를 돌보지 않았고, 오나라는 결국 멸망하고 말았다.
하루는 서시가 강가에 서있었는데, 맑고 투명한 강물이 서시의 아름다운 자태를 비추었다. “그 모습을 본 물속의 물고기가 그녀의 자태에 반해 헤엄치는 것을 잠시 잊고 강바닥으로 가라앉았다.”하여 ‘沈’ 잠길 침 자에 ‘魚’ 물고기 어 자를 써서 ‘침어(沈魚)’라는 별칭을 갖게 되었다.
두 번째는 ‘초선(貂蟬)’이란 여인인데, 초선은 그 용모가 빛나는 달과 같았을 뿐 아니라 가무(歌舞)에도 능했다. 《삼국지(三國志)》에서 동탁과 여포를 이간질하기 위해 초선이 이용한 이른바 ‘미인계(美人計)’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유명한 일화이다. 초선이 미인계를 이용해 대사를 성사시킨 후 달밤에 뒷마당에서 왕윤이 무사하기를 달님에게 기원할 때, 왕윤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초선의 미모에 달조차도 구름 사이로 숨어버렸구나.”라고 하였다하여 ‘閉’ 닫을 폐 자에 ‘月’ 달 월 자를 써서 ‘폐월(閉月)’이라 불리게 되었다. 임금이 혹하여 나라가 기울어져도 모를 정도의 미인이라는 뜻의 경국지색(傾國之色)은 바로 초선으로부터 비롯된 사자성어이다.
세 번째는 당나라의 미녀 ‘양귀비(楊貴妃)’인데, 어느 날, 양귀비가 화원을 산책하다가 무심코 함수화란 꽃송이를 건드리게 되었는데, 함수화는 양귀비의 미모에 놀라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숙였다고 한다. 이에 당(唐)현종은 “수화(羞花) 즉, 꽃을 부끄럽게 하는 아름다움”이라며 찬탄하고 그녀를 절대가인(絶對佳人)이라 칭했다. 이때부터 양귀비는 ‘羞’ 부끄러울 수 자에 ‘花’ 꽃 화 자를 써서 ‘수화(羞花)’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이후 현종은 양귀비에게 정신을 빼앗겨 나라를 돌보지 않게 되었고, 간신무리들의 농간에 당나라의 정치는 부패하게 되었다. 양귀비는 나라를 어지럽힌 죄로 안사(안록산의 사사명)의 난 때 피난길에서 처형당했다.
끝으로, 네 번째 소개할 여인은 오늘의 이야기인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주인공인 ‘왕소군(王昭君)’이란 여인이다. 앞서 소개한 춘추시대의 서시, 삼국시대의 초선, 당나라의 양귀비와 함께 중국 역사의 4대 미인으로 지칭되고 있는 왕소군은 뛰어난 용모와 재주를 갖춘 남군(南郡)의 양가집 딸로 태어나 16세에 한나라 원제의 후궁으로 들어갔으나, 단 한번도 황제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있었다.
당시 원제는 타고난 호색가였는데, 특이한 것은 수많은 궁녀를 궁에 들이고 자신이 직접 대면해 밤을 함께 보낼 후궁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궁정화가(宮廷畵家)인 모연수란 자에게 궁녀들의 초상화를 그리게 한 후, 초상화를 보고 그중에 제일 아름다운 여인을 골라 잠자리를 함께했다. 화공(畵工) 모연수가 그린 화첩에서 후궁을 골라 불러들이자, 후궁들은 저마다 원제의 승은(承恩)을 입어보려고 모연수에게 뇌물을 바쳤다. 그러나 평소 미모에 자신 있던 왕소군은 뇌물을 주지 않았다. 모연수는 이를 괘씸히 여겨 왕소군 그림의 왼뺨에 검은 점 하나를 그려 넣었다.
당시 흉노(匈奴)의 침입에 고민하던 한나라는 그들과의 우호수단으로 자국의 여인들을 보내어 결혼시키고 있었다. 어느 날 선우(흉노가 그들의 군주나 추장을 높여 부르던 이름)인 호한야가 공주와 결혼하기를 원했다. 그러자 원제는 화첩에 그려있던 못난 후궁들을 데려다가 이렇게 말했다.
“선우께서 직접 고르시지요.”
그러자 호한야가 외쳤다.
“바로 저 후궁입니다.”
원제는 깜짝 놀랐다.
‘내 여태 어찌 저런 미인을 몰랐을까?’
한나라의 왕 원제는 절세미인 왕소군을 실제로 보고 그 아름다움에 기겁한 나머지 선우 호한야에게 혼인준비를 핑계로 사흘의 말미를 양해 받은 후에 그녀와 사흘 밤낮을 함께 했다는 후문도 전해진다.
원제가 이런 상황을 수상히 여겨 세밀히 조사해본 결과 화공 모연수와 여러 후궁들 사이에 뇌물이 오갔던 전말(顚末)을 속속들이 알게 되었고 이에 모연수를 잡아다 바로 참수했다.
한편, 선우 호한야와 혼인을 마치고 흉노국으로 가는 도중에 왕소군은 멀리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보고 고향 생각에 젖어 비파를 타게 되는데, 무리지어 날아가던 기러기들이 그녀의 아름다운 미모와 비파소리를 듣고 잠시 날갯짓을 잊고 땅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이때부터 왕소군은 ‘落’ 떨어질 낙 자에 ‘雁’ 기러기 안 자를 써서 ‘낙안(落雁)’이라는 호칭을 얻게 되었다.
시성(詩聖) 두보(杜甫)와 함께 중국 최고의 시선(詩仙)으로 추앙받는, 우리에게 이태백(李太白)으로 더 잘 알려진 청련거사(靑蓮居士) 이백(李白)이 지은 <소군원(昭君怨)>은 왕소군이 한나라 궁을 떠나 흉노의 땅으로 출발하는 때의 비애와 정경을 너무나 잘 묘사하였다.
소군이 구슬안장 추어올려 昭君拂玉鞍(소군불옥안)
말에 오르니 붉은 뺨에는 눈물이 흐르네 上馬涕紅頰(상마체홍협)
오늘은 한나라 궁궐의 사람인데 今日漢宮人(금일한궁인)
내일 아침에는 오랑캐 땅의 첩이로구나 明朝胡地妾(명조호지첩)
☞ 중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세계 대부분의 역사서가 그러하지만) 모든 사건이 남성 중심으로 일어나고, 영웅도 역적도 대부분 남성이며, 여성이 부각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흰구름 가는 길
댓글목록
이현판님의 댓글
이현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봄은 봄인데 봄같지 않아 안타까운 심정에 봄을 부르는 한시 한 수....
大同江(대동강) - 鄭知常(정지상)
雨歇長堤草色多(우헐장제초색다) : 비 개인 언덕에 봄빛이 파릇파릇
送君南浦動悲歌(송군남포동비가) : 님 보내는 남포엔 슬픈 노랫소리 시작되네.
大同江水何時盡(대동강수하시진) : 대동강 물은 어느 때나 마를까나
別淚年年添綠波(별루년년첨록파) : 이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에 더해지네.
送人(송인)이라는 제목으로 더 유명한데 한국 역대의 시가를 모은 대동시선(大東詩選)에는
대동강으로 실려있다. 또한 南浦는 이별의 장소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장소를 가르킨다.
김용규님의 댓글
김용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서울도 강남 개포동에 노란 개나리가 피기 시작했다네
서울서 제일 먼저 봄을 알리는 곳이지요..
미인들 소개 한참 잘보았소이다.
그림상 누가 더이쁜지 모르겠소...ㅎ ㅎ
나훈아의 구수한 목소리도 오랬만에 들어보니 좋네요..
이현판님의 댓글
이현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회장님 남강둔치엔(집앞) 어제 보니 개나리가 만개를 했더이다.
하동 섬진강가 매화도 이제는 듬뿍 요염함을 뽐내고 있었으니
봄은 안오는 게 아니라 늦게나마 잠시 머룰고 떠날 채비를 하나 봅니다.
이번 주말엔 봄나들이 실컷 하시기 바랍니다.
정병옥님의 댓글
정병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東素河, 한시 잘 감상했습니다.
가끔씩 좋은 글 올려 주셔서 잘 읽고 있습니다.
일전에 도사님 얼굴을 몰라뵈어 미안했어요.
요즘 치매끼가 좀 있는 것 같아 걱정이요.
이해해 주시길....
이현판님의 댓글
이현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잘 계시나요? 요새도 등산은 자주하는지요..
봉수 딸 시집가는 날 두손 잡아 인사 나누면 되지
별 말씀을... 정지상의 글 중에 구름산 이야기가 있어 올립니다.
夏雲多奇峰(하운다기봉) - 鄭知常)
白日當天中(백일당천중) : 태양은 중천에 떠 있고
浮雲自作峯(부운자작봉) : 뜬 구름이 스스로 산봉우리를 이루네.
僧看疑有刹(승간의유찰) : 중은 절이 있지 않나 의아해 하고
鶴見恨無松(학견한무송) : 학은 소나무 없음을 한하네.
電影樵童斧(전영초동부) : 번갯불은 나무꾼이 도끼질 하듯 내리치고
雷聲隱士鍾(뇌성은사종) : 우르릉 대는 뇌성은 은사의 종소리 같네.
誰云山不動(수운산부동) : 누가 산이 움직이지 않는다 했나
飛去夕陽風(비거석양풍) : 석양 바람에 구름 산이 날아가네.
*도연명 사시의 한 구를 그대로 제목으로 사용함.
정병옥님의 댓글
정병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가끔씩 산에 다니고 있습니다.
근력은 부족하지만 건강을 위해 투자하는 게지요.
그러나 아름다운 自然을 느낄 수 있어 좋숩니다.
위 시에서 번갯불을 樵童斧와 비견한 것이 인상적이네요.
위 시를 읽다가 孤雲 崔致遠 선생 시가 생각나 옮겨 봅니다.
僧乎莫道靑山好(승호막도청산호) : 스님이여 말씀마오 청산이 좋다고
山好何事更出山(산호하사갱출산) : 산이 좋다면서 왜 산을 다시 나오시나
試看他日吾踪跡(시간타일오종적) : 저 뒷날 내 종적을 시험삼아 보시게
一入靑山更不還(일입청산갱불환) : 한 번 들면 다시는 안돌아 오리.
이 詩는 孤雲 선생의 마지막 作詩로서 고운 선생 자신이 어지러운 세상을 떠나
妻子를 데리고 깊숙히 伽倻山에 들어가 南岳寺의 定玄스님과 道友를 맺고 지내다가
조용히 이 곳에서 餘生을 마쳤다고 三國史記에 기록되어 있다.
선생의 최후에 대한 신빙할 자료는 없으나 다분히 전설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海印寺에서 숨어 살던 어느 날 그는 숲속에 갓과 신발을 남겨둔 채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고 한다.
즉 詩에서 보듯이 一入靑山更不還과 같이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은 채 神秘스러운
最後를 마치고 말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