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영배(戒盈杯)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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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현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1-12-12 13:47 조회7,13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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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한 지인의 소개로 경기도 이천의 소요호(燒窯戶-도자기를 굽는 사람의 집)를 방문한 일이 있다.
요즘은 전기나 가스를 이용해 온도를 유지해주는 개인용 가마가 많은데, 그곳은 장작으로 불을 때어 자기를 굽는 그야말로 전통방식의 가마 그대로였다. 도예가가 지성으로 빚어 놓은 여러 예비 작품들이 혹여 라도 1350도의 고른 온도가 유지되지 않아 태작(駄作)이 될라치면 장인(匠人)은 여지없이 망치를 들고 사람들이 볼 수 없게끔 깨버린다고 한다.
이렇게 가마 속에서 잘못 구워진 도자기들을 선별해 가차없이 망치로 깨어 내다버린 도자기의 조각을 가리켜 일명 “사금파리(도편陶片)”라고 한다.
그 도예가는 자신의 수작(秀作)급 다완(茶碗)을 들고 나와 내게 정성껏 차를 대접해 주며 “작품으로 인정받을 만한 다완은 아주 드물게 나오는데 간혹 제대로 된 다완이 나오기라도 하는 날이면, 소위 작품 값을 톡톡히 받기도 한다.”며 나지막이 귀띔을 해주었다. 돈을 앞세우면 부정을 타게 되어 작품이 될 만한 것이 안 나오기도 하겠지만, 작가의 체면에 손상이 갈 수도 있기에 내게 그저 속삭임으로 귀띔을 해준 것이 아닌가 싶었다.
수작 급 다완은 의당 그 자태(姿態)가 아름다워야 하기도 하겠지만, 다완 밑바닥에 흡사 거북이의 등껍질 무늬처럼, 혹은 높은 온도의 마그마가 환상적으로 흘러 녹아내린 것처럼 아름다운 자연적 균열(龜裂)같은 무늬가 박힌 것을 고가의 다완으로 평가한다고 한다.
귀한 손님을 그냥 보낼 수는 없다며 “계영배(戒盈杯)”라는 술잔을 선물로 손에 쥐어 주었는데, 차후에 계영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공부하고 나니 우리 조상들이 인간의 과(過)한 것에 대한 경계를 늘 가까이에서 하였다는 현리(玄理)를 알게 됐다.
이 계영배는 술은 즐기되 과음을 경계하라는 뜻에서 만든 잔으로, 절주배(節酒杯)라고도 한다. 생김새는 일반적인 술잔과 비슷한데, 자세히 살펴보면 잔 밑에 작은 구멍이 나 있다. 잔의 7할 이상 술을 채우면 모두 밑으로 흘러내려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늘 경계해야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름처럼 “넘침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뜻이다.
고대 중국에서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 하늘에 정성을 드리며 비밀리에 만들어졌던 “의기(儀器)”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공자가 제(齊)나라 환공(桓公)의 사당을 찾았을 때 생전의 환공이 늘 곁에 두고 보면서 스스로의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 사용했던 의기를 보았다고 한다. 환공은 이를 늘 곁에 두고 보는 그릇이라 하여 “유좌지기(宥坐之器)”라 불렀고, 공자도 이를 본받아 항상 곁에 두고 스스로를 가다듬으며 과욕과 지나침을 경계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실학자 규남 하백원과 도공 우명옥이 계영배를 만들었다고 전한다.
규남 하백원 은 조선후기 전라도 화순에서 태어나 평생을 실학 연구에 몸을 바친 과학자이자 성리학자 겸 실학자였는데, 그는 계영배를 비롯해 양수기 역할을 하는 자승차(自升車), 오늘날의 펌프같이 물의 수압을 이용한 강흡기와 자명종 등을 만들었다. 규남 하백원은 조선후기 호남의 4대 실학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또한 도공(陶工) 우명옥은 조선시대 왕실의 어기와 관청에 공납하던 도자기를 생산하는 곳인 사옹원의 광주분원에서 스승에게 열심히 배우고 익혀 마침내 스승도 이루지 못한 “설백자기(雪白磁器)”를 만들어 명성을 얻은 인물로 전해진다. 그 후 유명해진 우명옥은 방탕한 생활로 재물을 모두 탕진한 뒤 잘못을 뉘우치고 스승에게 돌아와 계영배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그 후 이 술잔을 조선의 거상(巨商) 임상옥이 소유하게 되는데, 그는 계영배를 늘 곁에 두고 끝없이 솟구치는 과욕을 다스리면서 큰 재산을 모았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에도 계영배와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제우스의 아들이며 프리기아의 왕이었던 탄탈로스(Tantalos)는 유일하게 신들만의 음식인 암브로시아(ambrosia)와 넥타르(nektar)를 먹을 수 있었는데, 탄탈로스는 신들과의 친분을 과신한 나머지 이 음식과 음료수를 지상으로 가져다 친구에게 나눠 주고 그 사실을 자랑하고 다녔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제우스가 탄탈로스를 죽이고 지옥에서 영원한 굶주림과 목마름의 형벌을 받게 하였다.
그것은 물이 턱에까지 차는 연못에 갇혀 있으나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 하면 물이 빠져 버리고, 머리 위에 잘 익은 과일이 잔뜩 달린 가지가 늘어져 있으나 손만 뻗치면 바람이 가지를 멀리 이동시켜 먹을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형벌이었다.』
물이나 액체가 부풀어 오르다가 일정 한계에 이르면 그 모두가 쏟아져버리는 현대의 화학 실험기구인 “탄탈로스의 접시”가 이로부터 유래하였다.
이렇듯 계(戒/誡)는 인간이 삶을 살면서 늘 생기는 욕심을 억제하라는 뜻에서 모든 종교를 망라하며 이 계를 강조한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근본 계율인 십계(十誡)는 하나님이 시나이 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렸다고 하는 열 가지 계율이다. (가톨릭에서는 천주십계)
불교에서의 계(戒)란 죄를 금하고 제약하는 것으로 소극적으로는 그른 일을 막고 나쁜 일을 멈추게 하는 힘이 되고, 적극적으로는 모든 선(善)을 일으키는 근본으로 십신(十信)의 아홉 번째 자리. 즉, 마음을 편히 머물게 하는 자리이다.
이보시게들! 계영배의 가르침처럼 항상 새로운 것을 채워 넣을 수 있도록 나의 자아(自我)에 3할 정도는 늘 비워두는 습관을 가지자. 가득차게 되면 넘치고, 그러함은 곧 가득차지 아니함만 못하다는 선현들의 가르침을 꼭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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