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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변정담

수녀와 승려의 아름다운 만남/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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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현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0-03-06 11:12 조회8,971회 댓글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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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께 / 이해인

 

스님,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내립니다.

비오는 날은

가벼운 옷을 입고 소설을 읽고 싶으시다던 스님,

꼿꼿이 앉아 읽지 말고 누워서 먼 산을 바라보며

두런두런 소리내어 읽어야 제 맛이 난다고 하시던 스님.

가끔 삶이 지루하거나 무기력해지면

밭에 나가 흙을 만지고 흙 냄새를 맡아 보라고

스님은 자주 말씀하셨지요


며칠 전엔 스님의 책을 읽다가 문득 생각이 나

오래 묵혀 둔 스님의 편지들을 다시 읽어보니

하나같이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닮은

스님의 수필처럼

향기로운 빛과 여운을 남기는 것들 이었습니다.


언젠가 제가 감당하기 힘든 일로 괴로워할 때

회색 줄무늬의 정갈한 한지에 정성껏 써보내 주신 글은

불교의 스님이면서도

어찌나 가톨릭적인 용어로 씌어 있는지

새삼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수년 전

저와 함께 가르멜수녀원에 가서 강의를 하셨을 때도

'눈감고 들으면 그대로 가톨릭 수사님의 말씀'이라고

그곳 수녀들이 표현했던 일이 떠오릅니다.


왠지 제 자신에 대한 실망이 깊어져서

우울해 있는 요즘의 제게

스님의 이 글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고,

잔잔한 깨우침과 기쁨을 줍니다.

 

어느 해 여름,

노란 달맞이꽃이 바람 속에 솨아솨아 소리를 내며

피어나는 모습을 스님과 함께 지켜보던 불일암의

그 고요한 뜰을 그리워하며 무척 오랜만에 인사 올립니다.

 

이젠 주소도 모르는 강원도 산골짜기로 들어가신 데다가

난해한 흘림체인 제 글씨를 늘처럼 못마땅해 하시고

나무라실까 지레 걱정도 되어서

아예 접어 두고 지냈지요.


스님, 언젠가 또 광안리에 오시어 이곳 여러 자매들과

스님의 표현대로 '현품 대조'도 하시고,

스님께서 펼치시는 '맑고 향기롭게'의 청정한 이야기도

들려주시길 기대해 봅니다.

이곳은 바다가 가까우니

스님께서 좋아하시는 물미역도 많이 드릴테니까요

 

 

이해인 수녀님께 / 법정

수녀님, 광안리 바닷가의 그 모래톱이

내 기억의 바다에 조촐히 자리잡습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재난들로 속상해 하던

수녀님의 그늘진 속뜰이 떠오릅니다.

사람의, 더구나 수도자의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기만 한다면

자기도취에 빠지기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어떤 역경에 처했을 때

우리는 보다 높은 뜻을 찾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 힘든 일들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알아차릴 수만 있다면

주님은 항시 우리와 함께 계시게 됩니다.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말고 그럴수록 더욱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기도드리시기 바랍니다.


신의 조영 안에서 볼 때

모든 일은 사람을 보다 알차게 형성시켜주기 위한

배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그런 뜻을 귓등으로

듣고 말아 모처럼의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수녀님, 예수님이 당한 수난에 비한다면

오늘 우리들이 겪는 일은

조그만 모래알에 미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옛 성인들은 오늘 우리들에게 큰 위로요

희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분 안에서 위로와 희망을 누리실 줄 믿습니다.


이번 길에 수녀원에서 하루 쉬면서 아침미사에 참례할

수 있었던 일을 무엇보다 뜻깊게 생각합니다.

그 동네의 질서와 고요가 내 속뜰에까지 울려 왔습니다.

수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산에는 해질녘에 달맞이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참으로 겸손한 꽃입니다.

갓 피어난 꽃 앞에 서기가 조심스럽습니다.

심기일전하여 날이면 날마다 새날을 맞으시기 바랍니다.

그 곳 광안리 자매들의 청안(淸安)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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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이현판님의 댓글

이현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두 분의 아름다운 친교에 동감하며
두 분의 동병상련의 아픔에 가슴가득...
두 분의 쾌유를 소원합니다.

이원표님의 댓글

이원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핸파이  밸일엄제 ?
잘지네고 있제
글잘봤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 란책을
반복해서 한 20번은 본거같다
두분의 편지가  한편의 시로구먼

이현판님의 댓글

이현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원표야! 요새 마이 바쁜가 보네?
[무소유]를 엄청 마이 봤네. 내 마이 본게 4번? [데미안]
진주도 모처럼 눈이 왔네, 봄 눈이 좀 독한 것이 시어머니 같지...
감기 조심하고, 하루란 말을 잊어버리고 보내게나...

이현판님의 댓글

이현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스님!
무슨 연 인지는 몰라도 스님 글을 올리고 얼마지 않아
멀고도 아늑한 그 곳으로 떠나셨으니 가시는 길
좋은 길동무와 벗하며 돌아왔던 그 곳으로 잘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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