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뿌리는 어디까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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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현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0-03-22 13:28 조회9,05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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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07월 03일 중국 톈진일보에 의하면, 러시아 고고학 발굴단이 티베트 서쪽의 강런보치봉 주변지역에서 세계 최고(最高)의 피라미드와 100개가 넘는 세계 최대의 피라미드군(群)을 발견했다고 한다.
환국(桓國)이 초창기에 도읍을 정한 위치와 일치한다.
고고학계의 탄소 연대 측정법에 의해, 그 거대한 피라미드는 진시황의 무덤보다도 수 천년 앞서는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까지, 이들 유적들은 중국 공안 당국에 의해 철저하게 숨겨지고 있다. 학술적인 조사나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들 피라미드는 만주와 한반도에 널려있는 고구려의 무덤(장군총)과 너무나 똑같은 모양과 형태를 가지고 있다. 학계에서는 이들 피라미드는 중국과 일본에는 찾아볼 수 없으며, 고구려의 건축 양식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상고(上古)시대의 유적지로서 중요한 의미를 던져주는 것이다.
"이 피라미드는 높이가 약 500피트(150미터)에 밑변의 너비가 1,200피트(360미터)이다. 이상스럽게도 이 피라미드는 대단한 관광명소가 되어야 할 터인데, 중국 측에서는 이의 존재를 부인하고, 이지역을 외국인 금지구역으로 선포해 버렸다."
<데이비드 칠드리스 저, '중국, 중앙아시아, 인도의 잃어버린 도시들'>
1. 동이의 유적 피라미드 고분
중국정부가 극비로 취급하는 우리 한민족의 단군조선 5011년 이전의 역사유물 고분군에 관한 자료를 소개한다.
한민족 고대국인 한(환)국의 역사를 찾아서...
중국놈들은 알고있다. 다만 비밀로 할 뿐이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진실하고 확실하게 추진하라!!!
이 피라미드고분의 평균 높이는 25~100 m로 축조하기 위해서는 수만명의 인력이 동원되어야 하는데 최초의 발견은 1945년에 독일주둔 미조종사의 사진 촬영과 보고서였으며 이에 대해 중국당국은 오직 자연적으로 형성된 산이라고만 말해왔습니다.
중국당국에 의하면 1963년에 중국의 학자들이 이 피라미드 고분을 진시황의 무덤으로 예상하고 발굴했지만 탄소연대측정에서 진시황의 무덤 이전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이 서방으로 알려집니다.
현재 중국정부에 의해서 철저하게 차단되어 학술적인 조사도 불가능한 상태이며 따라서 연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데 독일의 고고학자 하우스 돌프가 만주의 피라미드를 촬영하여 독일로 보낸 후에 서방세계에 만주의 피라미드를 알리는데 성공합니다.
2, 세계사를 다시 써야하는 인류최고의 유적 발견
이 커다란 초유의 피라미드에 대해 서방의 학자들이 의문제기와 발굴 요청(독일 고고학계는 6차례나 공식조사요청)을 하였는데 이에대한 중국의 공식 답변은 다음과 같습니다.
1987년 중국 정부는 "사진은 합성, 조작으로써 그 지역에 그런 피라미드무덤은 없는 것으로 조사되었다"며 일체 접촉을 금지및 함구함으로써 발굴을 회피해 왔습니다.
그 발표와 함께 1990년대부터 중국정부는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역사에 편입시켜서 자국학생에게 가르치고전 세계에 고구려역사가 중국역사라고 홍보하고 있는 중 입니다.
우리 韓민족은 이점을 각별히 유념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첨부한 항공촬영의 사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만주의 피라미드는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계단식 모양의 형태를 하는 만주 장군총과 한반도에 있는 고구려의 고분과 너무나 똑같은 모양과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학계에서는 이런 공법을 [고구려 특허 축조기술=들여쌓기 공법]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중국과 일본지역에는 찾아볼 수 없는 오직 고조선과 고구려 고유의 고분에서만 발견되는 한민족 전통적 건축공법 입니다.
그러면 !
BC.3000년전 만주지역에 살던 민족에 대한 의문점이 생기는데, 당시에 화하족(중국족)은 황하를 넘지 못하고 있었으며 석기시대였고, 만주지역은 중국의 [25사]와 한국의 사서에서 조선(古朝鮮)과 한국(환국桓國)의 활동무대로 되어 있습니다.
내몽골지역의 고분
그리고 최근에 중국정부는 침엽수등 나무를 심어 은폐하고 있는데 중국의 '신화통신'에서 이 고분이 어느 민족이 만든 것인지를 밝히는 글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3. 내몽골에 5000년 된 피라미드 고분
중국 고고학자들은 중국북부 내몽골 자치지역에서 무려 5000년전의 피라미드고분인 건축물을 발견했다. 이 피라미드고분은 아오한 배너(Aohan Banner)지역의 시지아지(Sijiazi)마을에서 북쪽으로 1Km 떨어진 산봉우리에 있었으며 아래부분 길이는 30m 이상 폭은 15m 이상인 3층 석조건물이다.
요녕성의 고고학 연구센터의 유명한 중국 고고학자 구오다쉰에 의하면 이 피라미드고분은 지금부터 5000년 전 홍산문명시대의 것이라고 말한다. 일곱개의 무덤과 제단의 유적들이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발견되었고 제사단이 있던 자리에서는 한문 쌀미(米)자 형태의 그림이 새겨진 도자기조각이 발견되었다.
고고학자들은 쌀미(米)자 형태의 그림은 고대인들이 천문(天文)을 익히기 위한 것이라 말했다. 고분의 하나에서 고고학자들은 뼈로 만든 피리와 돌 반지를 찾았고 다른 고분에서는 사람의 크기만한 여신상(女神像)조각이 새겨진 돌을 발굴했다.
고고학자들은 무덤의 벽에 새겨진 현재 힌두교의 시바신과 비슷한 상징으로 남근상을 찾고 놀랐으며 벽에 새겨진 현재 힌두교의 시바신과 비슷한 상징 밑에 여신(女神)들이 있는 작은 돌 조각상을 찾았다.
고고학자 구오는 상당수의 유물들이 처음 발굴되는 것들이며 이것들은 홍산문명의 매장 풍습과 종교, 산 제물을 바치는 의식, 그리고 사회구조에 대한 연구를 하기 위한 대단히 중요한 유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지적하는 바로는 이 피라미드고분의 발견은 중국문명의 근원을 밝혀나가는데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하였는데 이에대해, 한민족 역사학자들은 "그 유물은 중국보다는 한민족역사라고 말하는 편이 더 쉽고, 역사적으로 합리적인 일이다" 라고 말 합니다.
홍산문명은 내몽고(중국의 내몽고 자치주), 라이오닝(요녕성 서부), 하북(요녕성 서쪽)에 걸쳐서 분포된 신석기 문화권에 속하는 문명입니다.
고분의 위치도(내몽고자치구와 적봉지역)
지금까지의 학계의 통설로 볼때 중국에는 이집트와 남미에 있는 대형피라미드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왔는데 신화통신의 기사를 보면 대륙의 고조선지역인 내몽고과 만주지역에 피라미드의 존재가 확인된 것입니다.
이들 피라미드는 외형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과 오랜 세월이 지나 수목이 우거져 산처럼 변해 있는 것도 많은데 중국정부는 현재 이를 방치하고, 피라미드 연구자체를 철저하게 금기시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행위와 그 동안의 주장을 잘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합니다.
이 피라미드의 문명을 중국인들은 홍산문명이라고 이름 지었다. 그러나 이 홍산문명을 역사학적으로 해석하는데 가장설득력있는 역사적 주장이 바로 우리 한민족참역사의 4한국론 (단4국)입니다. 이것은 명백한 한민족의 역사인 것입니다.
축조연대는 고조선시대로 보아 무리가 없으며 이전의 한(환)국시대 환인(칸)이나 고위지도층의 무덤, 또는 단제 겸용으로 추정됩니다.
4. 티베트의 거대한 피라미드고분
피라미드고분에 대한 다른 신문(중앙일보)의 글이 있는데 한민족과 관련있는 유적으로 판단되어 별도로 소개합니다. (고조선은 4한국으로 나누어 세계를 지배했는데 그중 한 지역인 티베트지역4단군지역)
세계에서 가장 큰 피라미드로 알려진 이집트 기자(쿠푸왕)피라미드보다 더 큰 피라미드를 티베트 서쪽에서 발견했다고 중국 톈진일보가 보도했다.
발견 된 피라미드 가운데 가장 높은 피라미드는 180m 정도로 쿠푸왕의 피라미드(146m)보다 규모가 크다. 톈진일보는 현재 티베트지역의 유적을 조사했는데 티베트 서쪽끝단에 위치한 강런보치봉(神山)주변지역에서 100개가 넘는 피라미드를 발견했다.
러시아 학자들은 이번에 발견된 티베트의 피라미드가 세계 최대 규모임을 확신하면서 대부분 피라미드들이 극히 오래된 탓에 심하게 훼손됐지만 정밀 조사한 결과 피라미드의 윤곽을 분명하게 찾아낼 수 있었다.
대부분 피라미드들은 돌로 만들어졌으며 표면이 움푹 들어간 경우가 많았고 거대한 석조인물상도 발견되었는데 이번에 발굴된 피라미드는 계단식으로 멕시코 마야문명의 피라미드와 유사하다.
한국인(몽고)=에스키모=인디언=잉카=마야
고대환국이 일어나 문명을 열었던 홍산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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