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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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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홍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09-09-28 15:57 조회6,591회 댓글1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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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탱자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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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하늘에 걸린 탱자 나무를 올려다 본다.
    공마냥 동그란 열매가 황금빛으로 참 탐스럽게 잘 익었다.
    곱고 당당한 모습이 귤이나 유자 못지않아 무척 대견스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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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실 이 곳에서 탱자나무를 본다는 게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자연 서식지로 봐서는 여기가 북방 한계선쯤 되는 때문이다.
      난 복이 많은가 보다. 다행히 단지내에 일곱 그루가 있는데 그 중 두 녀석은 30년도 넘었다.  잎보다 먼저 핀 하얀 탱자꽃 시절부터, 진초록 매실만한 열매를 맺던 봄날을 거쳐, 또 골프공보다 더 크게 영글던 한여름 지나고,  이제 황금빛으로 익을 때까지 틈나면 쭉 들러 보곤 했다. 마치 갖 눈뜬 강아지 자라
재롱피우는 모습 지켜 보며 신기해 하듯이....
     탈없이 커 이처럼 당당하게 잘 익어준 탱자가 그저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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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탱자나무 볼 때마다 옛 추억이 새롭다. 비록 먹을 수 없어 안타깝긴 했지만, 고운 빛깔에 은은히 풍기는 소박한 향기가 좋아 호주머니에 넣고 있으면 그냥 마음이 넉넉해 지곤 했다. 지금도 탱자나무 밑에 가면,
아스라하게 흐려져 가던 그 시절의 그림들이 넝쿨호박처럼 줄줄이 매달려 나오곤 한다.
      마땅한 놀이감도 없어 구슬 삼아 치고 놀던 동무들 얼굴도, 긴 가시로 콩알보다 더 작은 다슬기 알맹이 뽑아 입에 넣어 주시던 그리운 손들도, 그 다슬기가 지천으로 널려있던 맑디 맑던 개울도, 성할 날이 없던 개구장이 시절 바늘보다는 덜 무서워 탱자가시면 그냥 내맡기던 고름든 내 무릎 종기도, 잎사귀의 애벌레는 징그러웠지만 그 처럼 잡고 싶던 호랑나비도, 애벌레 물고 날쌔게 가시 사이를 빠져나가던 멧새도, 쫓기고 무서우면 얼른 탱자나무 그늘로 숨어들던 노란 병아리도, 겨울날 소죽끓이며 놓던 새덫 ㅡ  놓치면 멀리 안 가고 그냥 탱자나무속으로 열매처럼 엉겨 붙던 참새 그리고 개똥쥐바퀴들도...... 
 
    이제 시골에도 탱자 나무 별로 없다.초가나 슬레이트 지붕이 스라브로 바뀌어 가듯 울타리가 없거나 벽돌 담으로 바뀐 까닭이다. 경지정리로 논둑가에도 설자리를 잃었고, 대밭이 홀대 받으니 탱자나무 울타리도 쓸모가 없어졌다. 그렇다고 어디 돈이 되는 나무인가? 그런 점에서 역시 난  운이 좋은 편이다. 이곳 서울 한복판에서 해마다 철마다 마음껏 탱자를 보고 즐길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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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탱자가 간혹 폄훼되는 게 못내 서운하다.
       탱자와 정붙이고 살아 온 나도 그러한데 정작 탱자 입장에서는 오죽하랴.
       '유자는 얽어도 선비 손에 놀고, 탱자는 잘 생겨도 거지 손에 논다' 는 말도 그렇고,
       하릴없이 빈둥빈둥 세월만 축내는 꼴을 '탱자탱자하고 있다'는 족보없는 표현도 그렇고,
       남귤북지니 귤화위지니하는  고상한  식자 표현에서도 은근히 별볼일 없는 대상으로 여겨져 버린다.
       진짜 탱자의 속성이나 정서는 간과한채 그냥 경제성만 따져서  달고 향기좋은 기준으로만 보고 판단해
       그런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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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탱자 하면 누구나 남귤북지(南橘北枳)라는 고사 성어를 쉽게 인용하곤 한다.
      안자춘추(晏子春秋)에 나오는 얘긴데 [강남의 감귤(橘)이 회수(淮水)를 건너 강북으로 가면 탱자(枳)가
      된다.]는 뜻으로, 환경에 따라 사람의 인성이 바뀐다는 걸 비유해서 한 말이겠지만,
      실은 귤이 추운 곳으로 가면 맛이 시어 진다는 것이지 감귤나무가 탱자나무로 되는 일은 없다.
      마치 강북의 탱자를 따뜻한 강남으로 옮겨 심는다 해서 감귤이 될 수 없는 것처럼....
      감귤은 감귤이요 탱자는 탱자 일 뿐인데...., 역으로 보면 이런 억지 생각도 든다.
      주변환경에 따라 본성이 달라지는 감귤보다, 어느 지역 가리지 않고 어떤 환경에서건 본성이 바뀌지 않는
      탱자 모습이 얼마나 더 믿음직한가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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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귤이나 유자가 달고 향기 진하다고 우쭐댈 건 못된다. 따지고 보면 귤나무건 유자나무건  탱자나무 묘목에 접붙여 키우질 않는가? 탱자가 훨 내한성이 있고 병충해에 강해 대목으로 쓰는 때문이다.
 
     어쩌면 내 삶도 그런 걸 닮았는지 모르겠다.
     자랄 때 고향시골의 삶이 묘목이라면, 그 이후 객지 삶은 접붙인 것 같기에 말이다. 예순이 지난 지금 가지에 열린 열매가 귤인지 유자인지 아니면 탱자 그대로인지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밑둥이 탱자라는 건 확실해 그게 늘 든든란 힘이 되곤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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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탱자나무 울타리는 벽이아니다. 가시가 날카로와 상징적이지, 막는다는 의미보다는 우회시키고 포용하는 면이 더 강하다.
     참새나 개똥쥐바퀴나 햇병아리나 씨암탉이나 쫓
기면 탱자나무 속으로 숨어 들지만, 단 한번도 가시에 찔린 새나 벌레를 본 적이 없다. 크고 무서운 상대면 '날 피해 가시오!' 하고, 작고 여린 상대면 '내 품안으로 오시오!' 하는 메세지를 던지는 게 탱자나무다.
    옛 고가 울타리나 터밭 울타리나 뺑 둘러 탱자나무로만 다 둘러 쌓인 곳은 보지 못했다. 여러 곳이 비어 있거나 낮은 관목으로 되어 있거나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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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탱자는 오래 전부터 민초들의 삶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던 것 같다.감귤이나 유자는 남해안 극히 일부나 제주도에 한한 정서고, 경기 이남 전 지역에선 때론 든든한 울타리로, 때론 같이 설움받는 이미지로, 때론 서로 돕는 친구로 그렇게 더불어 살아 온 것 같다.
      강화도엔 천연 기념물로 지정된 400년된 탱자나무 두그루가 있대서 그림이나마 빌려왔다. 윗그림은
갑곶리, 오른쪽은 사기리에 있는 탱자나무다. 정묘호란 때 외적 방어용으로 성 바깥쪽에 심었는데 넘 북쪽땅이라 조정에서도 각별히 신경써 일일이 챙겼단다. 여진족이야 난생 첨보는 탱자가시가 무섭기도 했겠지. 지금 두 그루는 그 때 심어 남아 있는 거란다.
     우리 선조들 탱자 사랑 놀랍다. 수형이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느티나무처럼 그늘지어 주는 것도 아니고 유자처럼 대학나무도 아니고 그렇다고 허기질 때 도움되는 것도 아니고 ...그런 탱자나무를 참 오래동안 보살피고 지켜와 주었다. 얼마나 미덥고 친근하게 여겼으면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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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도 탱자를 사랑한다.
      적어도 내게 탱자란, 늘 아름답던 시절을 떠올려주고, 무섭지만 포용하고 보호하는 어버이같은 든든함이 있고, 언제 어디서나 제자리 지키며 친구가 되어 주는 변하지 않는 의리가 있고, 덜 세련 되었지만 흙냄새 땀냄새같은 소박한 향기가 있고, 표 안나게 자기보다 나은 남을 위해 제몸을 바치는 희생이 있는 나무로 비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근래는 탱자의 약효가 각광받아 어린 열매(지실)나 익은 열매(지각) 할 것없이 윗속 아픈데,이뇨에, 또 아토피치료등에 귀하게 쓰이는 한약재란다.
      탱자가 유자나 귤이 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그저 탱자로 오래오래 곁에 있어 주면 더 바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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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끝으로 탱자가 지금보다 좀더 흔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은행나무나 대추나무 모과나무같이 너무 갑자기 흔하게 온통 뒤덮지 말고, 서울의 아파트 정원에도 빌딩사이 공간에도 그 흔한 자연 학습장에도 한 두 그루씩 잘 키워, 오가는 이들한테 '이게 탱자구나' 하는 추억이라도 되살려 주었으면 좋겠다. 지금 내가 누리는 이 복처럼....

     오는 추석 열흘 뒤 제사 모시러 내려가면, 지금은  텅비었을 서당 그 아래, 그 때 그 탱자나무도 둘러보고

그 잘 생긴 탱자 열매도 한 소쿠리 담아 와야겠다. 그래서 탱자 향취 가득한, 가을을 맞고 보내련다.

 

 

  

A Comme Amour - Richard Clayderman

 

댓글목록

구자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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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 친구의 탱자 사랑이 대단하구려

공자 맹자 구자 유자 탱자 가라사대

치통에는 탱자가 최고라오

치통이 있을 때 잘 익은 탱자를 칼로 잘게 썰은 쪼가리를 한 10분간만 물고 있으면 웬만한 치통은 가라앉는다오

김홍주님의 댓글

김홍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의 댓글 작성일

감사!..거긴 가을이 많이 깊었지요?...구박님 옆에 있으면 꼭 떡고물이 하나씩 떨어져요.ㅎㅎㅎ. 또 하나 배우고 갑니다. 마침 요즘 잇빨이 쉬원찮아 불편을 느끼고 있는 참이었는데...

표영현님의 댓글

표영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예나 지금이나 탱자는 변함이 없는데 그를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보는 사람의 인격과 가치관과 혜안이 아니겠소 친구의 아름다운 내면을 보는 듯 합니다. 추석때 땡자와 함께 고향소식과 추억도 많이 가져오길 바랍니다.

김홍주님의 댓글

김홍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의 댓글 작성일

그저 촌스런 생각 함 해본 정돈데 과한 평을 듣는 것 같소이다. 추석 땐 못내려 가고 늘 그 열흘 뒤 아버님 제사때 내려가곤 하지요. 그때 다녀와서 고향소식 전하리다....추석명절 잘 쇠세요.

김홍주님의 댓글

김홍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의 댓글 작성일

늘상 하는 얘기지만 그냥 스케치 수준입니다. 취미삼아서....

죽이던 사진 진짜 죽입디다 그려.ㅎㅎㅎ

권성영님의 댓글

권성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김사장 잇발 치료중이라드니 구사장 말되로 탱자 탱자하느것 아니오이까?
사진이 예술의 경지에 올라온것 같소
너무 환상적이외다 쪼록 건강하시길 기원 합니다

김홍주님의 댓글

김홍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의 댓글 작성일

맞아요. 잇빨 핑게대고 탱자탱자하고 있지요.ㅎㅎ
사진은 아직 초보 수준이라니깐요.
운동삼아 취미삼아 들고 댕김시로 그저 샤타 누르는 것 밖엔 모르는.

김대규님의 댓글

김대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우리가 학교 다닐때
진주에는 탱자 나무 울타리가 참 많았다.
우리집에도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었다.

홍주친구의 글을 보니
그 때의 추억이 새롭다.

특히 탱자나무 울타리 하면
아직도 옛날의 첫사랑의 추억에
심하게 몸살하는 친구가
우리중에 한사람 있다.

좋은 글 고맙소.

김홍주님의 댓글

김홍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의 댓글 작성일

탱자나무 울타리 있는 집이 그림처럼 떠 오르네.
아늑하고 포근한...

그 몸살 앓는 친구가 혹 김사장 아니오?

참..., 상심크신 소식 들었습니다.
위로 말씀 드리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원표님의 댓글

이원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한양에서 탱자를보니  올매나조을꼬
김사장 고마우이
옛날 울집  탱자울타리는
우굴쭈굴한  탱자도 있었는데
요새는  진주가도 보기힘들데

김홍주님의 댓글

김홍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의 댓글 작성일

그럼, 복 많지요?
탱자 모아 두었다가 좀 보내드릴 걸 그랬네.ㅎㅎㅎ
이따금씩이라도, 잊혀져 가는 것들 같이 더듬어 보며 사입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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