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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로 보는 관상사주학48(이소룡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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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자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09-09-16 07:51 조회12,9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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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룡의 운명

 

 



 본 글은 2009.09.06.(일) 조선일보 조용헌 살롱에 실린 글을 옮겨 왔음을 밝혀둔다.


 그는 왜 그리 빨리 죽었단 말인가. 서른셋에 죽었으니까 말이다. 이소룡은 1940년 경진생(庚辰生) 용띠이다. 지금 살아 있으면 69세이다. 이소룡이 어렸을 때에 그의 아버지는 홍콩의 유명한 역술가를 찾아가 아들의 사주팔자를 물어보았다고 한다. 당시 홍콩에는 중국 본토에서 건너온 역술계의 여러 문파 장문인급들이 활약하고 있을 때였다. 기문둔갑, 자미두수, 육임 등등의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군웅할거하던 시대였다. 홍콩은 일급의 한약재·보이차·역술가·골동품이 집중되어 있던 도시이기도 하였다.

이소룡의 팔자에 대한 그 역술가의 처방은 이러했다. "아들은 명(命)이 짧은 팔자이다. 짧은 명을 연장하려면 공부를 시켜라. 그것도 여기 있지 말고 외국에 나가서 공부를 하게 하면 더 좋다." 이 말을 듣고 온 아버지는 어린 이소룡에게 "너는 명이 짧다고 하니 외국에 가서 공부를 하거라" 하고 전했다. 이소룡은 홍콩을 떠나 미국에 건너가 대학을 다녔고, 학과도 철학과를 다녔다. 무술을 하면서도 대학 시절에 많은 독서를 했기 때문에 지적인 분위기를 풍길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소룡은 학문의 길을 걷지 않고 결국 영화배우를 하게 됐다. 타고난 무술가의 자질을 감출 수 없었다. 처음 출연한 정무문을 비롯하여 당산대형, 용쟁호투 등 그가 찍은 영화마다 대히트를 하면서 돈과 인기를 거머쥐게 되었다. 돈이 끓는 곳에는 마(魔)가 붙기 마련이다. 이소룡은 영화 때문에 다시 홍콩으로 돌아왔고, 평소 알고 지내던 여배우의 집에서 의문의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의 사망 원인을 놓고 갖가지 추측이 난무했다. 심지어 홍콩의 갱단과 갈등을 겪은 끝에 독살당했다는 얘기까지 유력하게 나돌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홍콩의 역술가가 진단했던 이소룡의 팔자는 '탐재괴인 재다신약(貪財壞印 財多身弱)' 팔자였던 것 같다. '재물을 탐하면 학문을 못하고, 재물이 많아지면 몸이 상한다'는 운명이다. 이런 팔자는 돈을 멀리하고 책을 보면서 단순한 생활을 해야만 오래 산다. 이소룡은 영화를 찍지 말았어야 했다. 그냥 대학에서 시간강사(?)나 했으면 오래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타고난 재능을 억누르기란 어려운 일이다. 결국 '팔자도망'을 못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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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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