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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봉산악회 두륜산 산행을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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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용현 작성일08-05-06 20:02 조회9,653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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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봉산악회 두륜산 산행 소감>  

해남 두륜산을 다녀와서....


2008년 4월20일(일)에 비봉산악회원의 일원으로 해남 두륜산에 다녀왔습니다.


출발하기 전 두륜산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았는데 두륜산은 한반도의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산으로써 멀리 중국 곤륜산에서 뻗어 나온 산줄기가 백두산에 이르고, 다시 방향을 틀어 남쪽으로 내려와 해남 땅에서 마지막으로 용틀임 하는 듯 강하게 솟아 오른 산인데 백두산의 '두'와 곤륜산의 '륜'자를 합해 '두륜'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그동안 여러번의 산행 안내를 받았으나 다른 일과 겹치는 경우가 많아 번번히 참가 기회를 갖지 못하다가 처음으로 참가해보는 산행이라 아침 일찍 집을 나설 때부터 기대와 두려움이 교차하는 가운데 모교에 도착하니 비봉산악회 회장으로 계시는 정한택(35회)선배님과 산악회 고문으로 계시고 얼마 전국제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하신 고영진(35회)선배님, 그리고 김형달(35회) 산청군 교육장님. 문동주(38회) 모교 교장선생님, 박정규(41회)부회장님, 정귀화(45회)산행대장님, 조득현(50회)총무님 등이 먼저 나오셔서 회원님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나로서는 첫 산행이라 낯섦과 어색함이 많은 산행일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따뜻하게 맞이해 준 선후배님 덕분으로 쉽게 낯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역시 동문이란게 이런 따스함이 있는거로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출발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차가 출발하기 직전에 바쁘게 차에 오르신 정종술(35회)선배님께서는 출발시간이 8시30분인줄 알았다고 하시면서 먼저 나온 일행에게 미안해하시자 누군가가 8시30분인 줄 알았는데 8시5분에 오셨으면 지각은 아니라고 말해 차 안이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윽고 버스가 출발하자 박정규 부회장님의 소개로 마이크를 잡으신 정한택 회장님께서는 비봉산악회를 우리 동문들과 함께 튼튼한 반석에 올려놓겠다는 포부의 인사 말씀에 많은 박수가 이어졌고, 특히 이번 4월 9일 총선에서 모처럼 우리 동문들이 단합된 힘을 보여줘 진고인의 체면을 가까스로 지켰다는 인사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박정규 부회장님께서는 미리 준비한 산행지도를 나눠주시면서 산행에 대해 자세히 안내 해 주셨고, 정성껏 준비한 자료라 산행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진주에서 출발해 3시간을 넘게 달려 11시 10분경 산행 시작 지점인 오소재 입구에 도착하자 곧바로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오심재를 12시경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취했다가 노승봉 바로 아래 헬기장에 12시 25분에 도착하여 아내가 정성껏 마련해준 도시락으로 점심 식사를 하였습니다.


약간의 술과 두렵나물, 취나물, 낙지 등 일행과 함께 나눠 먹으라면서 아내가 아침 일찍 서둘러 준비해 준 도시락인데도 산행속도가 늦은 우리 38회가 식사 장소에 도착하니 이미 먼저 도착한 회원들은 식사가 끝날 즈음이라 아내의 바램도 저바리고 말았습니다.


식사 후 휴식 시간도 갖지 못한 채 13시 20분에 다시 출발하여 노승봉의 험한 바윗길을 1시간 이상을 줄을 서서 기다린 후에야 겨우 우리 차례가 되어 밧줄과 쇠고리를 번갈아 잡으면서 한발 한발 힘겹게 올랐습니다.


노승봉의 정상에서 내려다 보니 유채꽃으로 물든 남쪽 들녘과 시원스레 펼쳐진 남해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고, 연두색 물감을 발라 놓은 듯한 싱그러운 신록 사이로 마른 버짐처럼 만개한 산벚꽃 경치는 가히 봄 산행의 진수라 할 만했습니다.


노승봉을 지나 일부는 만일재에서 바로 대흥사로 하산을 하고 일부는 두륜봉을 거쳐서 진불암을 통과하여 초의선사가 머물렀다고 전하는 일지암 코스로 가기로 되어 있으나 우리 일행은 가까운 대흥사 길을 택했습니다.


사간에 쫒기지만 았았다면 두륜산행은 여러 고승의 발자취를 따라 적당히 땀을 흘리며 산봉을 오르는 유유자적한 산행을 해 보고 싶은 어머니 품안 처럼 포근함이 느껴지는 산이었습니다.


두륜산에 자생하는 식생은 난대성 상록 활엽수와 온대성 낙엽 활엽수가 주종을 이루며, 봄의 춘백(春柏), 여름의 녹음, 가을의 단풍, 겨울의 동백(冬柏) 등 4계의 특색이 뚜렷한 산이라고 합니다. 특히 수백 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동백나무 숲이 널리 알려져 있고 대둔산 자락의 왕벚나무자생지는 천연기념물 제173호로 지정되어 있다고 하는데 출발시간이 촉박하여 들리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산행을 하는 동안 내내 마음을 무겁게 하였습니다.


만일재에서 5분 정도 내려오다가 만일암 터라는 화살표를 따라 오솔길을 내려가니 만일암터가 나왔는데 무성한 대나무 숲에 둘러싸인 빈터에는 암자는 간곳없고 오래된 오층석탑(전남 문화재자료 246호)만 덩그러니 외롭게 서 있었습니다. 고려시대 중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표지석 있고 탑 주위에는 주춧돌과 연자맷돌, 석등 등이 흩어져 있어 이곳이 옛날 암자가 있던 터라는 것을 짐작케 해 주었습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 쓴 만일암지(挽日庵志)의 만일암 창건 설화에 의하면 만일암을 창건할 때 암자보다 석탑을 먼저 세우기 위해 석탑을 다 쌓고 나서 암자를 지으려고 하는데, 해가 서산 너머로 지고 있었기에 만일암의 창건자인 정관존자는 해가 지지 못하도록 탑꼭대기에 붙잡아 매어 놓고 암자를 지었다고 해서 암자 이름을 잡을 만(挽)자와 해 일(日)자를 써서 만일암이라고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만일암터 바로 아래에는 그 유명한 천년수가 있었는데 원래는 암나무와 숫나무 두 그루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한 그루만 살아 있고 지름이 2.15m, 둘레 9.6m, 높이 22m에 달하는 이 나무의 나이는 약 천이백 년 정도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천년수를 뒤로하고 계속 편편한 계곡을 따라 내려오니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넓은 대흥사에 도착하였는데 이곳 대흥사의 현판은 원교 이광사의 글씨라 하고, 무량수각 현판은 추사 김정희가 제주로 귀양 가면서 써준 글씨라는 것을 안내자의 설명을 듣고나서야  알았습니다.
또한, 표충사 편액은 조선 정조가 써서 내려준 것이고, 가허루 현판은 병중에도 하루에 천 자씩 썼다는 호남의 명필 창암 이삼만의 글씨라고 합니다.


무량수각에서 밖으로 나오면 초의선사(1786-1866년) (조선 후기 불교계에 선풍을 일으키고 명맥만 유지하던 우리 차와 다도를 중흥시켜 다성(茶聖)으로 추앙받는 인물)의 동상이 있었고, 그 아래에는 서산대사의 유물관인 성보박물관이 있었습니다. 밀양 표충사에는 사명대사의 유품을 보관하는 성보박물관이라면, 해남 표충사는 서산대사의 유품을 보관하는 성보박물관인 셈입니다.


대흥사를 벗어나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다시 아스팔트길을 30여분이나 걸어 내려오니(이 번 산행에서 우리를 가장 지치게 했던 길이었음) 먼저 온 일행이 기다리고 있었고, 일행과 함께 미리 준비해 둔 하산주로 허기진 배를 채웠습니다.     


이번 산행을 통하여 정한택 회장이하 집행부의 노력과 정성·비봉산악회에 대한 애착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여러 종류의 모임중에서도 가장 일하기가 어려운 집행부가 산악회 집행부라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비봉산악회 집행부는 그 어려운 일을 즐겁게 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집행부의 노력에 동문들과 함께 힘찬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그리고 이번 산행에서는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차 안에서 보낸 왕복 장장 7시간을 메꿔 줄 프로그램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 날 산행을 함께한 우리 회원 중에는 대학교수로부터 역사 선생님, 지리 선생님, 국어 선생님, 체육 선생님, 의사, 사업가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분들이 있었는데 집행부에서는 이 분들에게 부탁을 드려 차량 이동을 하는 동안 무료한 시간을 그 지방의 지리적 특색, 역사, 산업, 산에 얽힌 전설이라도 한 가지씩 준비를 해 회원들에게 전해줄 수 있는 시간을 갖었다면 더 알차고, 보람되고, 유익한 산행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음 날은 대부분의 회원들은 직장에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보다 가까운 산행지를 택했으면 합니다. 거리 관계로 너무 늦은 시간에 도착했기 때문에 서로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서둘러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코스를 1코스와 2코스 등으로 나누어 산행을 실시한 것은 체력과 능력에 따라 산행을 할 수 있었다는 면에서는 바람직하지만, 한편으로는 같은 일행이 서로 흩어지게 되어 자연히 산만해져서 집중력 있는 산행이 되지는 못했던 것 갔습니다.


장시간의 산행을 통해 체력을 보강하는 것이 산행의 목적이긴 하지만 명승고적과 유적지 등 문화재 답사와 해설을 통해 정신적인 양식을 쌓을 수만 있다면 더 유익한 산행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기억에 남을 산행을 함께한 비봉산악회 집행부와 선·후배 동문께 감사드립니다.


댓글목록

김대규님의 댓글

김대규 작성일

나도 같이 가보고 싶었는데
재경 비봉축제 때문에
같이 가지 못해 미안 합니다.

용현이 친구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니 내가 다녀온 듯한 칙각에 빠지네.

우리기에 같이 간 친구들은 누구누구인가?
사진도 좀 올려 주시지.

어쨌던
멋진 산행 소식 고맙다.

김용현님의 댓글

김용현 작성일

사진을 본부 동창회 홈페이지에 올렸는데 이상하게 사진이 안 올려지던데
아직 사진 올리는 기술이 부족해서 그런가 봅니다. 

함께한 친구는
모교 교장 문동주, 조현수, 강동호, 류재석, 강호상, 권유현 김용현 등 7명이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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