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1주기(2011.02.28.)를 맞아 - 정운현 - 오마이뉴스(2011.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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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자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1-02-28 10:43 조회12,19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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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 1주기(2011.02.28.)를 맞아 - 정운현 - 오마이뉴스(2011.02.27)
오늘, 서울 하늘엔 이른 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어제 제주에서부터 시작된 비는 마침내 서울에도 도착해
이 땅에 다가올 춘신(春信)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이 비 그치면 온 산야에 푸르디푸른 봄빛이 가득하겠지요.
꼭 이맘때 법정 스님은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이승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시고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떠나셨습니다.
관은 물론 수의조차 마련하지 말도록 유언하신 탓에
생전에 입던 승복차림 그대로 연화대에 오른 법정 스님.
스님은 그렇게 한 줌의 재가 되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송광사 다비장으로 향하는 법정스님의 법구와 이를 따르는 행렬
평생 ‘무소유’를 가슴에 품고 ‘맑은 가난’, 즉 청빈(淸貧)을 실천하셨지요.
그런 스님의 언행은 종교를 떠나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불사에 정신이 빠진 스님들, 교회 건물 올리기에 혼이 빠진 목사님들...
그들이 믿고 숭앙하는 절대자가 바라는 것은 진정 그런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리 볼 때 이 시대를 사는 종교인 가운데 그만한 이가 또 있을까요?
“무소유란 아무 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富)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청빈(淸貧)은 이 시대에도 귀한 덕목(德目)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님은 일찍이 이를 삶의 귀한 가치로 여겨왔고, 또 세상에 가르쳐 왔습니다.
많은 이들이 입으로는 스님의 가르침을 외고 있으나 가슴으로 깨우친 자 그 몇이리오.
심지어 스님의 일곱 상좌(제자)들조차도 그 가르침을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세속의 중생들이 따르기 어려운 것은 말해 무엇 하리오.
향기로운 말과 글로 세상을 어루만지신 법정 스님
듣기로 스님은 생전에 식사로 하루 한 끼를 드셨다고 합니다. 검소함입니다.
또 상좌도 부처님이 상좌를 둔 그 나이에 비로소 상좌를 처음 두었으며,
부처님보다 오래 살 수 없으니 한 살이라도 적은 나이에 입적하길 소원하셨고,
그 염원이 통했던지 실지로 부처님이 입적하신 나이보다 한 살 아래에 입적하셨습니다.
이건 겸손함입니다.
요즘 우리 주변의 종교인들은 검소와 겸손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부처님보다 더 높은 위치에 앉은 스님이 한 둘이 아니며,
예수님보다 더 높은 위치에 앉은 목사님 역시 한 둘이 아닙니다.
이들은 마치 자신들이 부처요, 예수인양 행동하며 또 누리고 삽니다.
그래놓고도 그들이 부처와 예수를 숭앙하는 자들인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스님께서 입적하신 후 류시화 시인은 스님의 유언을 공개했습니다.
“절대로 다비식 같은 것을 하지 말라. 이 몸뚱아리 하나를 처리하기 위해 소중한 나무들을 베지 말라. 내가 죽으면 강원도 오두막 앞에 내가 늘 좌선하던 커다란 넓적바위가 있으니 남아 있는 땔감 가져다 그 위에 얹어놓고 화장해 달라. 수의는 절대 만들지 말고 내가 입던 옷을 입혀서 태워 달라. 그리고 타고 남은 재는 봄마다 나에게 아름다운 꽃공양을 바치던 오두막 뜰의 철쭉나무 아래 뿌려 달라. 그것이 내가 꽃에게 보답하는 길이다. 어떤 거창한 의식도 하지 말고, 세상에 떠들썩하게 알리지 말라.”
스님은 1992년부터 17년간 평창 오대산의 쯔데기골 오두막에 기거하셨습니다.
그 오두막에서 사시사철 변함없는 골바람과 계곡의 물소리를 벗하셨지요.
보도에 따르면, 스님 입적 1주기를 앞두고 사람들이 거길 다녀간 모양입니다.
얼어붙은 계곡을 지나 오두막으로 향하는 오솔길은 겨우내 내린 눈으로 소복한데,
그 위에는 몇몇 사람 발자국이 그리움처럼 남아 있더라는 겁니다.
생전에 스님이 수도하던 송광사 불일암
적지 않은 스님들이 닭 벼슬만도 못한 벼슬을 좇아 권승(權僧)을 추구했지만,
스님은 머리를 깎은 후 내내 선승(禪僧)으로 지냈습니다.
그러다보니 속세보다는 산속 생활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스님이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내지도 않았습니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는 재야인사들과 함께 민주화를 위해 목소리를 냈으며,
불교계가 어지러울 때는 교계 인사의 한 사람으로서 역할을 게을리 하지도 않았습니다.
어지러운 세태를 향해 말과 글로 청량제 역할을 하신 것도 빼놓을 수 없지요.
스님의 책으로 쓰고 말로 뱉은 향기로움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문제라면 스님에게 배운 제자들과 세간 사람들의 ‘어리석음’이지요.
세상엔 스승만한 제자가 드물고 형만한 아우는 드문가 봅니다.
옛적의 가르침은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해도 탈색되지 않는가 봅니다.
스님께서 입적하신 후 한데 모인 일곱 상좌(제자)들
스님의 1주기를 맞아 내일(28일) 오전 길상사에서 추모법회를 연다고 합니다.
길상사는 대원각을 시주받아 생전에 스님이 다듬고 살펴온 사찰입니다.
그런데 그곳 주지 자리를 두고 제자들간에 갈등이 불거졌다고 합니다.
누구도 아닌, ‘무소유’ 삶을 살다 가신 법정스님의 제자들이 이러고들 있으니
참으로 꼴사납고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법정 스님이시여!
생전에 너무도 많은 것을 저희들에게 선물해 주셨습니다.
그 선물이 곳간에 차고 넘치나 그 귀함을 모르고 사는 저희들이옵니다.
그런 저희들을 책(責)해 주소서!
그리고 이제 부디 열반에 드시길 축원합니다.
법정 스님이시여! 이제 열반에 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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